[문화칼럼/박효신]디자인 킹 ‘애플 파워’를 배워라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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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이면 애플컴퓨터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인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전시장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와 자사의 신제품을 소개한다.

1998년 1월, 회생하기 힘들다던 애플컴퓨터에 구원 투수로 다시 등장한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 들고 나온 제품은 조너선 아이브라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저가 매킨토시, ‘아이맥’이었다. 컴퓨터 속이 살짝 보인다고 하여 ‘반투명 디자인’으로 불렸던 깜찍한 플라스틱 컴퓨터는 다 쓰러져 가던 애플을 금방 흑자 기업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후 애플컴퓨터는 세 번만 클릭하면 어떤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다는 ‘아이팟’으로 MP3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했다.

그리고 2007년 스티브 잡스는 휴대전화기 ‘아이폰’을 들고 나왔다. 전시장에 모인 관객은 터치스크린 방식의 화면 디자인에 탄성을 올렸다. 올해 예상 판매량이 1000만 대쯤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무서운 건 이제부터다. 음악시장을 평정한 디자인 승부사가 휴대전화기 시장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메이저급 휴대전화 회사들은 아이폰의 디자인을 분석하느라 바쁜 한 주를 보냈을 것이다. 이것이 1984년 이래 컴퓨터 제품과 그래픽 디자인의 주도권을 장악해 온 ‘애플 파워’다.

애플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한국 전자회사의 디자인 경쟁력은 어디쯤 와 있을까?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간단한 실험을 하곤 한다. 잠시 눈을 감고 한국의 유명 전자제품 브랜드를 하나씩 불러 본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기다린다. 떠오르는 상징물이 없다면 디자인은 없다. 나는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경쟁력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안은 무엇일까? 급한 대로 할 수 있는 양약(洋藥)식 처방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회사에는 최고경영자(CEO)를 설득할 수 있는 디자인 디렉터가 있어야 한다. CEO를 설득할 수 없는 디자이너는 고객을 설득할 수 없다. 한국 디자이너가 CEO를 설득하지 못하니 CEO가 디자인의 최종 결정자가 되고 CEO의 취향과 수준에만 맞는 디지털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

둘째, 디자인 개발비를 기술 개발비의 5%라도 써야 한다. 기술 개발비의 1%만이라도 디자인 개발에 투자하는 회사가 한국에 몇 개나 될까? 그만큼 아직도 ‘디자인 파워’를 믿지 못하는 경영자가 많다.

셋째, 미래 프로젝트를 위한 사내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사내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이 없으면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없다. 따라서 회사 디자인의 미래도 없다. 오죽 답답했으면 패션 디자이너에게 제품 디자인을 맡기는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이겠는가?

우리가 1등과 거리가 멀었던 때는 모방을 당연시 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아니다. 기술은 모방해도 잘 모르지만 디자인을 모방하면 정말 티가 난다. 망신스러운 일이다. 기술로 1등하는 것보다 디자인으로 1등하는 것은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린다. 디자인은 문화적인 속성이 강해서 숙성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한국 디자인의 미래를 밝게 본다. 하나는 우리는 조상이 전해 준 좋은 디자인 형질(DNA)을 갖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한국이 1년에 국내외 대학에서 4만 명 가까이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구입할 때 디자인 취향과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사람이 많다. 고객에게 돈을 쓰게 하면서 고민을 안겨 주는 것은 경영자와 디자이너의 도리가 아니다.

박효신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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