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 프리미엄’ 뚝… 기업체 가도 특별대접 못받아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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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 공채 시험장에서 응시자들이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올해 국세청 9급 공채에는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등 전문 자격증 보유자들이 110명이나 지원한 끝에 33명이 최종 합격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장에서 응시자들이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올해 국세청 9급 공채에는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등 전문 자격증 보유자들이 110명이나 지원한 끝에 33명이 최종 합격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례1

2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우리은행 본점에서는 하반기 신입행원 최종 면접이 진행됐다.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 자격증 보유자 187명이 지원했지만 이날 면접까지 올라온 사람은 7명에 그쳤다. 특히 21명이 지원한 공인회계사는 1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전형 과정의 하나였던 2박 3일간의 합숙면접이 이들에게 ‘지뢰밭’이었던 것. 우리은행 이상철 채용파트장은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보다는 적극성과 끼, 끈, 꾀를 갖춘 일반 지원자가 더 경쟁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례2

지방 국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A(30) 씨. 2004년 9월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현실에 맞닥뜨린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무사 업계를 들여다보니 탄탄한 실무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기’더군요. 월급쟁이 세무사 하는 선배들이 연 2400만∼2500만 원을 받고도 비전을 못 찾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A 씨는 이듬해부터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지난해 12월 국세청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연간 300명 선에 그쳤던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합격자가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문직 자격증 프리미엄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사실상 ‘제로(0)’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이에 따라 ‘경력 전환’에 나서는 전문직 자격증 보유자가 늘었고 관련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 자격증만으로는 쉽지 않은 세상살이

서울 시내 일선 세무서에서 9급으로 일하는 B(여) 씨는 200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후 한동안 회계법인에 근무했다. 친구들은 그를 ‘잘나간다’며 부러워했다.

그랬던 B 씨가 국세청 9급 공무원으로 ‘인생 전환’을 한 것은 현실의 벽 때문이었다.

“회계법인에서 살아남으려면 적극적인 영업으로 승진을 해야 하는데 공인회계사 자격증 하나 달랑 들고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무회계를 맡았는데 이왕이면 국세청에 들어가 ‘실전(實戰)’을 익히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같이 근무했던 선후배 동료들도 비슷한 생각에 다른 곳으로 많이 옮겼어요.”

B 씨는 비록 9급 공무원이지만 배우는 게 많아 후회는 없다고 했다.

기업에서 회계법인으로 돌아가 ‘수습 재수’를 하는 역(逆) 이동도 흔하다.

국내 메이저 회계법인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37) 회계사는 “합격 후 곧바로 기업으로 간 회계사들은 회계업무의 ‘꽃’이라는 감사를 맡기 어려워 다시 회계법인 수습으로 들어오곤 한다”며 “이런 ‘재수생’ 회계사들이 늘면서 고령 합격자들은 실무를 익힐 수 있는 회계법인을 찾는 데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느끼는 위기감도 마찬가지다. 매년 11월 말이면 사법연수원에서 열리는 취업설명회는 더는 ‘이색 풍경’이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사법연수원 홈페이지에 ‘기업 사내(社內) 변호사로 갈 때는 대리급 이하로 가지 말자’, ‘연봉 5000만 원 밑으로는 가지 말자’는 ‘담합성 글’까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해 우리투자증권이 대리급 변호사 2명을 모집하는 데 11명이 몰려들었다.

○ 자격증 프리미엄은 거의 ‘제로’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직 자격증 보유자에 대한 기업의 대우도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삼성 LG SK 등 주요 기업은 공인회계사나 세무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우를 하지 않고 일반 사원과 똑같이 뽑고 있다.

사법연수원을 갓 마친 새내기 변호사도 지난해까지는 과장급으로 채용하는 곳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부터 대기업은 대부분 대리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SK텔레콤 인력2팀 최상훈 매니저는 “예전에는 ‘자격증=자질(Quality)’이라는 등식이 통했지만 최근에는 채용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경력(Career)”이라며 “자격증이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형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초보 변호사들에게 세후(稅後) 기준으로 월 500만 원 이상의 고액 급여를 줬던 회계법인은 2, 3년 전부터는 월 300만∼400만 원으로 급여를 크게 줄였다.

회계법인에 근무하고 있는 박모(33)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1, 2년 주기로 계약을 갱신하는 회계법인 변호사의 ‘위험수당’을 고려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들의 인생 진로도 양극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금융부문의 경험을 쌓기 위해 계약직으로 입사한 회계사들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하는 희망자가 매년 3, 4명씩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가늘고 길게’ 살겠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감독원에서 일하는 변호사 16명은 모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지만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다.

금감원 인사팀 관계자는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금융 분야 감독경험을 쌓은 뒤 언제든 독립해 나갈 사람들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t@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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