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급 인사태풍 온다” 숨죽인 대기업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코멘트
《다음 달부터 내년 초에 걸쳐 재계에 대규모 ‘인사 태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주요 대기업은 이번 연말연시 정기 인사 때 최고경영진을 대폭 교체해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 환경에 대응한다는 인사 방침을 정했다. 삼성그룹은 이미 계열사 사장단의 80% 이상을 바꾸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도 비자금 수사와 관련한 책임론이 사장단 인사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LG그룹은 실적 부진에 따른 인책론이 나오고 있으며, SK그룹은 임기가 끝난 사장단의 재신임 여부가 관심사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윤종용(62) 삼성전자 부회장, 김동진(56) 현대차그룹 부회장, 김쌍수(61) LG전자 부회장 등 주요 그룹 부회장급 최고경영자(CEO)들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일부 그룹은 현실적으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 삼성, 인사 적체 해소할 듯

최근 5년간 대규모 사장단 인사가 없었던 삼성그룹은 올해 교체된 금융계열사 사장단을 뺀 나머지 CEO를 내년 초 인사를 통해 상당수 교체할 예정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현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현재로는 ‘물갈이’ 가능성이 더 크다.

삼성의 한 임원은 “오랜 기간 사장단 인사가 없다 보니 부사장급 이하의 승진이 적체돼 왔고, 국내외 경쟁사들의 영입 시도까지 이어져 조직 분위기에 영향을 줬다”며 “대규모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윤 부회장은 일단 유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업구조를 가진 삼성전자를 지난 10년간 안정적으로 이끌어 오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리더십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윤 부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황창규(53) 반도체총괄 사장과 이기태(58) 정보통신총괄 사장이 선의의 라이벌 관계여서 이 중 한 명이 CEO가 될 경우 전체적인 조직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삼성의 고민이다.

그룹 전략기획실의 팀장 중 일부는 계열사로 자리를 옮길 전망이다. 이순동(59) 그룹 기획홍보팀장(부사장)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본인의 희망대로 제일기획 사장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높다. 새 그룹 기획홍보팀장에는 기획팀장 출신의 장충기(52) 부사장이 유력하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2인자’ 격인 이학수(60)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퇴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38) 삼성전자 상무는 이번에 전무로 승진할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 비자금 수사 파장 촉각

현대차그룹은 ‘뒷방’으로 물러나 있던 박정인(63) 현대모비스 고문을 9월 그룹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으로 복귀시키고 기획총괄본부를 기획조정실로 축소 개편하는 등 조직을 정비해 인사 요인이 많진 않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는 비자금 사건 파장이 이번 인사에 어디까지 영향을 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대응에 일부 혼선이 빚어졌다는 지적을 받은 일부 사장급 이상에 대한 문책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비자금 사건 재판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이번 정기 인사가 아닌 내년 상반기 중 비정기 인사를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룹 안팎에서는 김동진 부회장과 채양기(53) 현대차그룹 경영기획담당 사장의 거취에 관심을 쏟고 있다. 만약 변동이 생긴다면 김 부회장의 후임으로는 최재국(58) 현대차 사장과 판매·노무 분야 전문가인 윤여철(54) 현대차 울산공장장(사장)이, 채 사장의 후임으로는 이정대(51) 현대차 재경사업본부장(부사장)이 각각 거론된다.

○ LG, 실적 악화가 ‘암초’

LG그룹은 지난해와 올해 LG화학, LG텔레콤 등 6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바꿔 CEO 인사 요인은 적다. 다만 LG전자, LG필립스LCD 등의 실적 악화에 따른 ‘책임론’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의 거취는 12월로 예정된 정기 인사의 핵심 관심사다. 실적 부진이 두드러졌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강한 김 부회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김 부회장이 물러날 경우 후임으로는 남용(58) 전 LG텔레콤 사장과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권영수(49) 사장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거대 조직인 LG전자를 3년여 동안 이끌어 온 김 부회장의 리더십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그룹 내에서는 그의 유임을 점치는 시각이 다소 우세해지고 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LG전자의 실적이 하반기에 개선되면서 김 부회장의 퇴진설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고 전했다.

김 부회장의 퇴진 여부와 관계없이 LG전자 사장단 중 일부는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SK, 일부 CEO 교체 여부 관심

SK그룹은 조정남(65) SK텔레콤 부회장과 신헌철(61) SK㈜ 사장의 연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데, 그룹 안팎에서는 유임설과 교체설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조 부회장은 새로 만들어지는 그룹 산하 복지재단의 책임자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김신배(52) SK텔레콤 사장은 2008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어 이번 인사 대상에서는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신 사장이 물러난다면 후임으로 정만원(54) SK네트웍스 사장이 오거나 SK㈜ 내부에서 승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SK네트웍스의 정 사장은 내년에 임기가 끝나지만 그동안 실적이 좋았고 회사를 관리하는 채권단이 신임하고 있어 자리를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대기업 사장단 인사 기준은▼

실적-리더십 고려… 총수 의중 최대 변수

대기업들은 그동안 사장단에 대한 구체적 인사 기준을 기밀로 해 왔다.

최종 결정 과정에서 그룹 총수의 의중이 크게 작용하는 데다 외부로 빠져나가면 이런저런 구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객관적인 인사 기준을 만들어 내외에 공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사장단 인사의 세부 기준은 구조조정본부 인사팀 외에는 웬만한 계열사 임원급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그룹은 경영실적과 주가(株價), 우수 인재 채용 등의 항목을 인사 평가에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사장단 인사는 정몽구 회장의 의중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얼마 전부터 전문성과 비전을 갖춘 최고경영자나 임원을 발탁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기준은 정 회장 외에는 알기가 힘들다”고 밝혔다.

LG그룹은 사장단 인사의 기준을 내외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공개하고 있다. 사장단에 대한 평가 기준은 경영성과와 리더십 등 두 가지. 경영성과는 해당 연도의 사업 실적 및 중장기 사업 경쟁력에 대한 평가로, 리더십은 상급자와 하급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측정한다. 사장단에 대한 평가는 지주회사인 ㈜LG가 전담한다.

SK그룹 임원은 자기 자신 및 상하급자, 외부 전문가로부터 다단계의 역량평가를 받는다. 사업 실적에 대한 평가는 그룹 구조조정본부 격인 SK㈜의 투자회사관리실이 담당한다. 투자회사관리실은 각 계열사 사장단의 실적과 SKMS(SK경영법) 실천 여부, 목표 달성 등을 평가한 달성지표를 만들어 각 계열사 이사회에 제출한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