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핵심규제 그대로인 ‘기업환경개선 대책’… 20% 부족”

  • 입력 2006년 9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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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8일 내놓은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은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정부는 “창업에서 퇴출까지 가능한 대책을 모두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정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재계가 바라는 ‘조건 없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에 대한 언급도 없어 ‘덩어리 규제는 그대로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2%가 아닌 20% 정도 아쉽다”고 밝혔다. 》

○ 공장 설립 인허가 절차 대폭 축소

정부는 우선 공장을 지을 때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줄일 계획이다.

대지 1322m²(약 400평) 이하의 소규모 공장을 설립할 때 대지 내에 문화재가 묻혀 있는지 조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국고로 전액 지원한다. 또 공장 설립 대행센터를 통하여 설립에 대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계획관리지역 내 3만 m² 이상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기업들에 부과되는 지구단위계획 수립의무에 따른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공장입지 유도지구’가 신설된다. 이 지구는 시장이나 군수가 개별기업과 협의해 계획관리지역 내 3만∼50만 m² 크기로 지정해 사전환경성 검토를 면제해 주는 등의 혜택을 준다.

그러나 정부는 공장입지에 대한 대표적인 규제인 수도권 공장 총량제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수도권 내 대규모 공장 설립 요청이 있으면 건별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 포괄적 동산 담보대출 도입

중소기업 대출 때 반드시 부동산을 담보로 요구하는 은행의 관행에 제동이 걸린다. 정부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이외의 모든 동산을 담보로 활용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자산에 붙은 ‘저당’을 유동화하는 제도도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두 과제는 아직 법무부와의 협의가 끝나지 않은 장기과제로 분류돼 있다.

2005년 도입한 벤처 패자부활제도는 도덕성과 기술성 평가 이후 신청자의 신용회복절차를 진행해 실효성을 높이고 지원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과세 부문에서는 법인세율을 낮추지 않았지만 기업들이 불편을 지적한 일부 세제를 정비했다.

소규모 회사를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미국식 유한책임회사(LLC)가 도입되는 것에 맞춰 유한책임회사에 대한 과세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접대비의 범위도 보완한다. 접대비로 분류되는 소액 광고 선전비는 손금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전용면적 25.7평 이하 국민임대주택 등을 특별 분양할 때는 중소기업 근로자 우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법률제도 부문에서는 △재판절차를 간소화하는 약식재판 △‘민사 중재원’과 같은 대체적 분쟁해결제도 △법을 위반한 기업과 협의해 시정방안을 마련하는 ‘동의명령제도’ 등도 도입하기로 했다.

○ 재계, “환영하지만 아쉽다”

재계는 이번 대책을 환영하면서도 수도권 규제완화 및 출총제 등 핵심 규제에 대한 해법이 없어 아쉽다는 반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이번 대책은 현장 중심의 조사와 검토를 통해 기업의 애로사항을 개선하려는 것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논평을 통해 “창업 활성화를 위해 투자 보조금을 지급하고 소규모 공장설립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이 중소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고 밝혔다.

하지만 경기 이천공장 증설이 유보된 하이닉스반도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이닉스반도체 측은 “중장기적 성장을 위해 메모리반도체 공장이 꼭 필요하다”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규제완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권오규 경제팀이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은 평가하지만 핵심 규제는 건드리지 못해 2%가 아닌 20% 정도 아쉽다”고 밝혔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고개숙인 정부

‘우리 경제는 창업과 공장 설립, 외자 유치 등의 측면에서 활력이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창업과 공장 설립이 2004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며 국내 핵심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 지속되고 매년 이전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29일 발표한 ‘기업 환경 개선 종합대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판적인 민간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로 착각할 만큼 냉정한 ‘자기 고백’이 담겨 있다는 평가로 정부가 발표한 문건에 실린 내용으로는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한국에 존재하는 규제가 2000년 7133개에서 2006년 8083개로 6년간 13.3% 늘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01∼2005년 5년간 각종 부담금 징수액이 평균 12.7%나 증가하는 등 징수가 편하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계속 늘려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번 대책은 세계은행이 한국의 기업 환경을 세계 175개국 중 23위로 평가해 싱가포르(1위) 홍콩(5위) 태국(18위) 등에 비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지난해 43억 달러로 2004년(92억 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규모는 중국(724억 달러) 홍콩(369억 달러) 싱가포르(334억 달러)는 물론 멕시코(181억 달러) 브라질(151억 달러)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한국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정부가 욕을 먹더라도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점을 낱낱이 공개하고 최대한 한꺼번에 정리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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