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 예은이 ‘좌판’ 벌인 까닭은?

  • 입력 2006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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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금융감독원 주최 금융백일장 공모전에서 각각 우수상을 받은 조효순 씨(오른쪽)와 큰딸 선예은 양(왼쪽에서 두 번째), 예은 양의 동생들. 조 씨는 “경제를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바로 부모”라고 말했다. 강병기  기자
지난달 금융감독원 주최 금융백일장 공모전에서 각각 우수상을 받은 조효순 씨(오른쪽)와 큰딸 선예은 양(왼쪽에서 두 번째), 예은 양의 동생들. 조 씨는 “경제를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바로 부모”라고 말했다. 강병기 기자
《그날따라 조효순(40·여·인천 부평구 삼산동) 씨는 유독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선예은·13)가 시장에 내다 팔 인형과 신발, 옷가지 등을 한보따리 챙기고 나간 뒤였다.‘어떻게 하는지 멀리서라도 지켜볼까’ ‘옆에서 말 한마디라도 거들 걸 그랬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일단 혼자 하게 놔두기로 했다. 》

다 늦은 저녁 시간. 파김치가 돼 돌아온 예은이는 밥상머리에서 눈물을 잔뜩 쏟아냈다. “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딸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 카드는 도깨비 방망이?

“엄마 돈 없어. 그리고 오늘 시장에서는 메모한 것만 산다고 약속했잖아.”(엄마 조 씨)

“엄마 카드 있잖아요, 돈 없어도 되잖아요.”(딸 예은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신용카드를 ‘돈 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 방망이쯤으로 아는 눈치였다.

조 씨는 이런 기억도 떠올렸다.

아이들과 TV 뉴스를 보는데 30대 가장이 명예퇴직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뜸 초등학생 아들이 “정년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아이에게 아빠는 단지 ‘늙어서도 돈만 벌어오는 사람’에 불과했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축을 왜 해야 되는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의 경제 교육은 부모 몫이라는 것을 조 씨는 그때 깨달았다.

○ “돈 벌기가 이리 힘들 줄은…”

그는 아이들에게 카드 명세서를 보여줬다.

이건 5일에 구두 산 것, 이건 8일에 할머니 모시고 식당에서 쓴 것 등. 명세서와 예금통장을 비교해 가며 설명해 주자 겨우 이해하는 눈치였다.

서점에서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경제 관련 책도 사다가 아이들 방 책장에 꽂아놓았다.

신문에 나오는 금리나 환율이 무슨 뜻인지, 어른들이 왜 주식에 관심이 많은지도 가르쳐야 했다. 조 씨는 “아이들이 더 크면 읽히려고 모아둔 책도 벌써 한가득”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전(實戰)’이 필요했다.

조 씨는 아이들을 수시로 재래시장에 데리고 갔다. 미리 준비한 1000원짜리 몇 장을 각자에게 주어 직접 오이 양파 등을 고르게 했다.

올해 5월 구청에서 열린 중고품 시장에서는 아예 직접 장사를 시켜봤다. 세상에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해 보라는 뜻이었다.

시장에 갔다 온 아이는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생한 얘기를 털어놨다.

예의 없는 꼬마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답해 주려 애쓴 얘기, 실밥이 좀 삐져나온 운동화를 보며 망설이던 아이에게 “앞으로 몇 년은 끄떡없다”고 설득해 겨우 판 얘기….

그날 벌어 온 5500원보다 훨씬 많은 공부를 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 “진짜 부자는 검소한 법”

예은이의 아버지는 은행원이다.

“아빠, 부자들을 대해 보면 어때요? 멋도 부리고 좋은 차에 비싼 집에… 뭔가 다를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부자는 정말 검소하단다. 식당에서 휴지 한 장을 쓸 때도 아까워하지. 저 사람이 정말 수십억 원을 가진 사람일까 할 정도란다.”

아이들은 이제 용돈기입장도 꼬박꼬박 쓴다.

지출 내용이 계산에 맞지 않으면 다음 달 용돈에서 빼겠다고 ‘엄포’를 놓자 그 후부터 틀린 적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항상 용돈이 모자란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지금은 저축을 더 많이 한단다.

“돈에 대한 교육은 정말 평생교육인 것 같아요.”

조 씨는 딸 예은 양과 함께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금융백일장 공모전’에서 나란히 우수상을 받았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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