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여개 사업자단체 ‘돈선거 유혹지대’

  • 입력 200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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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실시된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화물연합)의 회장 선거 때 수억 원의 돈이 오간 정황을 포착한 경찰이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당시 회장으로 당선된 S(70) 씨가 일부 시도협회 이사장들에게 수천만 원씩 건넨 것이 확인됐지만 어떤 법률을 적용할지 난감하기 때문. ▶본보 7월 31일자 10면 참조

경찰 관계자는 “사업자 단체의 선거는 관련법이 없어 통상 업무방해나 배임증재·수재 혐의를 적용하지만 업무와의 연관성 등을 입증하기 힘들다”며 “이러다 보니 사업자 단체 선거는 ‘복마전’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각종 협회나 조합 등 사업자 단체의 선거에서 금품수수 의혹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이들 선거를 관리하는 제도가 없어 부정선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당수 사업자 단체가 막대한 예산을 운용하는 데다 정부로부터 교육업무 등 각종 업무를 위탁받는 등 적지 않은 권한을 갖고 있어 부정선거는 또 다른 부패를 양산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잇단 선거 잡음=지난해 2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 선거 때 당시 성모(65) 이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며 대의원 14명에게 300만∼500만 원을 건넸다가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선거 때는 당시 선거 출마자 6명과 선거 참모 9명 등 모두 51명이 무더기로 ‘돈 선거’에 연루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선거 잡음이 끊이지 않자 지난달 29일 회장 선거관리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화물연합 서울협회의 한 회원은 “지난해 서울협회 이사장 선거가 설날을 앞두고 있었는데 후보마다 회원들에게 상품권이나 양주를 돌렸다”며 “너무나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라 누구 하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한은 막강, 규정은 미비=전국의 사업자 단체는 4000여 개. 이들 단체 가운데 상당수가 한 해 수백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화물연합공제조합의 한 해 예산은 3000억 원,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공제조합은 2000억 원,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공제조합은 1800억 원에 이른다.

이들 공제조합엔 이사장이 따로 있지만 공제조합을 운용하는 사업자 단체의 대표가 실질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있다. 수억 원을 뿌려서라도 대표가 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경찰은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업자 단체의 정관에는 선거관리 규정이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부정선거에 대한 제재나 처벌 규정이 없는 실정.

화물연합의 한 관계자는 “총회 때마다 선거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표가 되고 나면 또다시 돈을 써 쉽게 재선하려는 욕심에 귀를 닫게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주요 사업자 단체의 요직은 관계부처 퇴직 공무원들이 눈독을 들이는 자리라 관계부처의 관리감독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백인합동법률사무소 전병남 변호사는 “사업자 단체의 활동은 민간 영역이라지만 공적인 성격이 짙은 만큼 정부가 각 단체 정관에 부정선거 규제 규정을 의무적으로 삽입하도록 하거나 단체 설립 근거 법률에 선거규제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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