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품붕괴론’ 강남-북 공직자 생생토크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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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자문회의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에너지자문회의에 앞서 정문수 대통령경제보좌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석동률 기자
에너지 자문회의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에너지자문회의에 앞서 정문수 대통령경제보좌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석동률 기자
18일 오전 11시 정부과천청사 통합 브리핑룸.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브리핑에 나서 최근 ‘부동산 버블론’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확실히 전달했다.

“강남 3개 구의 아파트 값은 버블 붕괴 직전이다.”

그로부터 1시간 뒤 평소 허물없이 지내 온 4명이 함께 가벼운 점심 식사를 했다.

부동산 대책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는 재경부 사무관 A(41·강북 32평형 아파트 거주) 씨,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강남지역의 32평형 아파트에 사는 검찰 간부 B(44) 씨, 경제부처 간부이자 B 씨의 친구인 C(44·강북 32평형 아파트 거주) 씨, 그리고 본보 기자가 참석했다.

편안한 사이이기에 허심탄회한 자리였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정책의 타깃으로 삼은 강남 거주자와의 대화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 주제는 최근 버블 논란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아파트 값이었다.

B 씨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정부가 부동산 값 잡는다고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난 1998년에 4억 원을 주고 강남에 32평 아파트를 샀어. 분명히 말하지만 1가구 1주택이야. 그런데 말이야, 집값이 15억 원까지 올랐어. 정부 논리에 따르자면 난 부동산 투기꾼인데…. 난 법을 집행하는 검찰 간부야. 그런데 날 부동산 투기꾼으로 모니 할 말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긴 뒤 A 씨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정말 진심으로 말씀드리는데 올해 안에 강남을 뜨세요. 세금을 어떻게 견디려고 하십니까. 종합부동산세는 간단합니다. 올해가 1이면 2008년은 3이고, 2010년은 5입니다. 더구나 내년부터 양도세는 실거래가 기준으로 부과합니다. 하긴 종부세를 많이 걷으면 지방에선 좋아하죠. 강남에서 세금 거둬서 지역별로 수십억 원씩 교부금으로 나가니까요.”

종부세는 올해 공시가격의 70%, 내년부터 매년 10%포인트씩 증가해 2009년에는 100%가 부과된다.

갑자기 B 씨가 술 한 병을 시키더니 속내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래 떠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갈 구멍은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난 올해 종부세, 재산세로 1000만 원 가까이를 내야 돼. 그래서 옮기려고 했지. 그런데 양도세가 얼마인지 아니. 자그마치 3억 원이 넘어.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선배는 양도세 내고도 양도차익을 챙기잖아요. 올해 안 떠나면 양도차익은 더 줄 수밖에 없어요. 올해 떠나는 게 돈 버는 겁니다.”(A 씨)

“솔직히 얘기할까. 강남 사람들이 아무리 세금을 매긴다고 떠날 것 같니. 나도 아내에게 떠나자고 얘기했어. 하지만 애 때문에 못 떠난대요. 아들이 중학생인데 여기서 10년 가까이 친구 사귀고 친구 부모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그런데 버블이라고 떠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니. 나도 이 집 팔아서 넓은 평수로 옮기고 골프장 회원권도 사고 넉넉하게 살고 싶지. 그런데 그렇게 못해. 여기 살고 싶거든. 난 실수요자야.”(B 씨)

A 씨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주춤했다.

“그래요. 재경부에서 올해 들어 강남에 전입한 가구를 분석해 봤어요. 상당수가 1가구 1주택이고 실수요자입니다. 인정해요. 하지만 아파트 값이 오르기 시작한 2, 3년 전 강남 전입자들은 대부분 1가구 2, 3주택자들입니다. 이 중 일부는 지방에 살면서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사둔 겁니다. 그 투기자들은 잡아야 할 것 아닙니까.”(A 씨)

3월 권혁세 재경부 재산소비세제국장은 한덕수 부총리의 지시로 강남 전입자들이 실수요자인지 투기자인지 분석했다. 그 결과 올해 전입자의 80%는 실수요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네가 강남에 한 채, 강북에 한 채, 지방에 한 채 모두 3채를 갖고 있다고 하자. 어디부터 처분하겠어. 강남 아파트는 끝까지 붙들고 있을 거야. 주위에 2, 3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3·30대책 전에 이미 비(非)강남지역을 처분했다더라.”(B 씨)

‘창과 방패’의 논쟁을 들으며 침묵을 지키던 경제부처 간부 C 씨가 입을 열었다.

“강남 아파트 값을 20∼30% 떨어뜨린다면 내가 사는 강북 아파트는 50%가 떨어질 텐데….”

“당연히 그렇겠죠. 부동산 값 하락을 보면 토지, 지방아파트, 수도권, 서울 비강남, 강남 순으로 떨어지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강남 사람들 세금 폭탄을 못 견딜 것입니다. 정부와 시장이 맞서면 정부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어요. 지금까지는 정부가 그런 의지를 갖지 않았을 뿐입니다.”(A 씨)

하지만 B 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버티련다. 대선이 지나고 2008년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시장의 수요를 정부가 꺾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노무현 정권이 끝나도 부동산 세제는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두고 보세요. 이번에는 정부와 시장의 정면승부입니다.”(A 씨)

어색해진 자리를 풀려고 C 씨가 A 씨를 겨냥해 농담을 던졌다.

“혹시 강남 집값 떨어지면 그리로 이사 가려고 하는 것 아냐? 그러고 보니 공익과 사익이 완전히 일치하는 영역이구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네 사람은 헤어졌다. 공직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아파트 값 생생 토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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