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원 조세개혁특위 위원장 17일 본보 인터뷰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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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세제개편 작업을 총괄하는 조세개혁특별위원회 곽태원(郭泰元·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사진) 위원장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며 사의를 밝혔다는 사실이 19일 본보 보도로 알려지자 정부는 사퇴 이유를 개인적인 것으로 축소하려 애썼다(본보 19일자 A1·4면 참조). 이날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곽 위원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으며 사의를 받아들일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곽 위원장도 분권위를 통해 본보와 나눈 대화 내용을 부인하는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이에 본보는 17일 오후 3시 서강대 연구실에서 있었던 곽 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상세히 게재한다. 인터뷰는 50분간 진행됐다.》

그는 이날 세제와 관련된 여러 정책이 위원장인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인터뷰 내내 불편해 했다.

다음은 곽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사의 표명을 한 게 맞습니까.

“분권위에 했습니다. 윤성식(尹誠植) 씨가 위원장인 곳이지요.”

―왜 사퇴하시려 하는지.

“그쪽 사람들과 토론이 안 되는 분위기여서…. 정책을 정하려면 이쪽 주장, 저쪽 주장 다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안 됐어요.”

―윤 위원장과 친하신 걸로 아는데, 뭐라고 하던가요. 사표는 수리됐나요.

“사표 수리는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 계속하기 곤란한데…. (말을 돌리며) 그런데 지난번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은 어느 기자가 보도했나요? 그 보도 이후 재정경제부 실무 책임자가 잘렸지요.”

―동아일보가 보도했습니다. 조세개혁안이 공론화된 마당에 공청회를 연기하며 그냥 덮어두려는 건 잘못 아닌가요.

“그땐 정부가 잘못 대처했습니다. 일은 일대로 많이 한 실무자에게 상은 못 주더라도 불이익을 주면 안 되지요.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부임한 조세개혁실무기획단 부단장이 인사하러 온다고 연락이 왔는데 오지 말라고 했어요.”

―세제 개편의 방향이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만 치우친 느낌입니다.

“재원이 필요하면 세금 많이 걷어도 되죠. 문제는 재원을 양극화 해소용으로만 쓰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장이 더 중요한데도 재원을 어디에 쓸지 방향을 정해 놓고 얘기하니 토론이 되겠습니까.”

―재원을 늘리려면 국민 세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는데….

“세 부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조세부담률 얘기를 합니다. 선진국보다 낮다는 논리지요. 복지 서비스 수준, 노동시장 여건 등이 다 다른데 숫자만 놓고 단순 비교하면 안 됩니다. 국가채무 비율도 이런 식으로 단순 비교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억지 논리를 만들면 안 되죠.”

―정부가 조세부담률을 어느 수준까지 높일 수 있을까요.

“못 높여요. 지금 소득세나 법인세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인가요. 올린다고 하면 얼마나 저항이 심할지 뻔히 알지 않습니까. 그건 결국 현 조세부담률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증거입니다. 더 올리려면 성장률을 높여야 하는데, 글쎄요.”

―현 정부의 양극화 해소 방식에는 동의하는지요.

“동의 못합니다. 소득 상위 10%에게서 세금을 걷어 소득 하위 10%를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상은 너무 단순합니다. 고소득층의 자산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는 데다 고소득층이 경제 활동에 대한 의욕을 잃으면 전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을 미처 생각 못한 것 같아요.”

―저소득층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내년부터 시행하는 근로소득지원세제 말이군요. 정부가 너무 서둘러요. 그 제도는 돈이 수조 원 이상이 드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직 할 때가 아니에요.”

―부동산 세제를 평가한다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은 부동산에서 생기는 모든 수익을 조세로 징수하려는 정책입니다. 미국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가 주장한 토지공유제와 비슷하죠. 그는 토지에 대해서만 공유제를 주장했으나 현 정부 들어 이정우(李廷雨)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건물에까지 공유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책이지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건 정권이 바뀌면 법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인가요.

“유지될 수 없는 정책이란 뜻이죠. 주택 소유자가 빠져나갈 여지가 없는데 누가 집을 팔려고 하겠습니까. 새 부동산 세제로 손해를 보는 일반인이 ‘법이 바뀌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공평과세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공평하게 세금을 매기려면 소득 파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국세청이 소득 파악 행정의 주도권을 잡겠다며 일용직 근로자에게 급여카드를 주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익이 없어요.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더 중요한데 일의 앞뒤가 바뀐 것 같아요.”

―위원장으로서 내세울 만한 일은….

“한 일이 없어요. 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실질적인 작업은 거의 못했어요. 위원회가 언제 구성됐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답답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곽 위원장은 19일 오후 본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소위원회에서 세제 개편의 방향을 잡아 본위원회를 거쳐 위로 올리는 과정에서 위원들 사이에 불만이 있었을 수 있다”면서도 “내가 ‘토론이 안 된다’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는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다.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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