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여, 언론과 通하라”…대기업 미디어 트레이닝 붐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15분


코멘트
“손님들의 문화의식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서울 잠실 롯데월드 무료 개장으로 수만 명이 몰려 안전사고가 난 뒤 롯데그룹은 한 임원의 말실수로 더 큰 곤욕을 치렀다.

관람객의 시민의식 부족을 탓하는 듯한 말로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원들의 말실수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평소 ‘미디어 트레이닝(언론 관계 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기업들은 이 분야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언론을 알아야 좋은 임원 된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24시간 이내에 대응하고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추는 건 사태를 악화시키죠. 노코멘트라고 말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 줘야 합니다.”

지난달 22일 경기 용인시 SK아카데미 연수원. 100여 명의 SK그룹 계열사 신임 임원들을 상대로 ‘언론의 이해’ 교육이 이뤄졌다. 이 그룹에서 이런 미디어 트레이닝이 생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강사로 나선 SK그룹 기업문화실의 권오용 전무는 ‘언론 대응 가이드’라는 책자를 나눠 주고 언론사의 근무 시스템, 기자 상대 요령, 위기 상황별 대처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권 전무는 “좋은 CEO가 되려면 언론의 생리를 알아야 하고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LG그룹도 지난달 임원세미나에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미디어 교육을 했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틈날 때마다 PR컨설팅 관계자나 현직 언론인을 초청해 언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신임 임원들을 대상으로 ‘미디어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라는 미디어 트레이닝을 했다. 강사로 나섰던 ㈜한화 기획실의 강기수 부장은 “인터뷰 때 ‘우리 회사’를 ‘저희 회사’로 얘기하는 등 사소한 말실수를 잡아내는 것부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자연스럽게 취하는 방법 등 구체적인 교육과 인터뷰 실습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국제경영연구원은 매년 기업의 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13주 일정의 ‘글로벌 최고홍보책임자(CCO) 과정’이라는 미디어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 CEO가 직접 나서는 글로벌 기업

세계적인 PR컨설팅회사인 에델만에 따르면 미국 100대 기업 CEO의 90%는 미디어 트레이닝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외국계 기업 CEO나 임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돼 왔다.

미디어트레이닝 월드와이드코리아의 송은주 이사는 “작년부터 기업 CEO 임원들의 미디어 트레이닝 교육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특히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건 이후에는 위기 관리의 중요성 때문인지 문의 건수가 평소보다 30% 이상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호 에델만코리아 사장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나 잭 웰치 전 GE 회장처럼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모두 직접 대중과 언론 앞에 선다”며 “일만 잘한다고 좋은 CEO가 아니라 위기가 닥쳤을 때 적절히 대처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1982년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독극물 사건’은 훌륭한 위기 극복 사례로 꼽힌다.

미국 시카고에서 진통제를 복용하고 시민 7명이 사망하자 CEO가 직접 나서 사건 개요를 발표했다. 회사에는 미디어센터를 설치해 매일 기자들에게 신속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2400억 원을 들여 전국에 있는 자사 제품을 모두 회수했다.

얼마 뒤 진실은 밝혀졌다. 한 정신병자가 진통제에 독극물을 삽입한 것이었다. 회사는 소비자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위기상황시 미디어 대응 원칙▼

-즉각 대응하라(24시간 이내)

-미디어센터를 활용하라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라

-일체의 비난 행위를 하지 마라

-모든 취재진을 공평하게 대하라

-노코멘트, 오프 더 레코드라고 말하지 마라

-진심으로 걱정하는 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라

(위기 유형: 대형 인명사고, 리콜 소비자 클레임, 오보, 독극물 투입 오염, 노사분규, 불공정거래 뇌물, 컴퓨터 오류, 기밀 유출, 환경 파괴, 산업재해, 신용등급 하락, 회사 부도, 불매운동, 특혜 시비, 경영권 위협, 소송 분쟁, 최고경영자 실언, 악성 루머, 무리한 구조조정, 경제 위기, 정부 시민단체 지역주민 갈등)

자료: SK그룹 미디어가이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