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수출지원 헛바퀴…‘시장개척단’이 ‘유람단’ 될라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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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A 지방자치단체가 파견한 시장개척단 10여 명이 러시아의 KOTRA 모스크바 무역관을 방문했다. 이들이 수출 상담을 마치고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돼 이번엔 7개 기업으로 구성된 B 지자체의 시장개척단이 모스크바를 찾았다. 지난해 이렇게 모스크바를 방문한 국내 지자체의 시장개척단은 모두 16곳. 러시아에서 실제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추운 겨울과 여름 휴가기간을 뺀 6개월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일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온 셈이다. 이들은 현지 바이어들과 300여 건의 상담을 했다. 하지만 실제 수출로 이어진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KOTRA 모스크바 무역관 관계자는 “수출 상담이 반드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개척단을 파견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가 지방 중소기업의 수출을 돕기 위해 운영하는 시장개척단 프로그램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3년 동안 지자체의 시장개척단 지원은 대폭 늘었지만 지방 중소업체의 수출 실적은 오히려 2년 연속 줄어 수출지원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못함을 입증했다.

○ 늘어나는 지원, 뒷걸음치는 실적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각 지자체의 시장개척단 파견은 총 265회로 1964년 이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았다.

2002년 129회였던 시장개척단 파견은 △2003년 198회 △2004년 230회로 해마다 급증했다. 비용도 2003년 49억 원에서 지난해 74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연간 수출실적 100만 달러(약 10억 원) 미만인 중소수출업체의 수출액은 2003년 47억8500만 달러에서 지난해 44억2600만 달러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수출실적이 있는 중소기업 수도 같은 기간 15% 줄었다.

시장개척단 제도의 수혜자가 중소 수출업체임을 고려하면 현재의 수출지원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지자체별 각개약진…의욕은 좋지만

시장개척단은 2002년까지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통합 운영됐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기초지자체인 시군구가 제각각 개척단 파견에 나섰다. 정부도 특별회계를 편성해 개척단에 들어가는 비용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의욕만큼 현실이 따라 주지 않았다. 각 지자체의 수출 품목이 큰 차이가 없는 데다 상품 경쟁력도 높지 않기 때문. 일부 지자체는 개척단에 나갈 업체 수를 채우기조차 버거워하는 실정이다.

KOTRA 관계자는 “개척단 한 회당 평균 10개 업체가 적당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이를 채우지 못해 4, 5개 업체만 데리고 나간다”면서 “현지 무역관이 미리 시장을 조사해 상품성이 없다고 통보해도 지자체가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시장개척단이 ‘유람단’으로 변질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세금을 써가며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張在澈) 수석연구원은 “지자체가 깃발을 들고 나서면 업체들이 뒤를 따르는 수출 지원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지자체별로 추진하는 시장개척단은 규모의 경제를 위해서라도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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