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펀드는 ‘비자금 저수지’…검찰이 파악한 실체

  • 입력 2006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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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검찰 관계자는 5일 “대기업 사건은 수사를 오래 하면 할수록 범죄혐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왼쪽) 등 검찰 수뇌부는 이번 사건의 방향과 파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검찰 관계자는 5일 “대기업 사건은 수사를 오래 하면 할수록 범죄혐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왼쪽) 등 검찰 수뇌부는 이번 사건의 방향과 파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국내 5개 투자회사에서 운용했던 ‘펀드’는 겉은 합법이지만 속은 불법인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비자금 저수지’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 펀드의 실소유주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라는 점에서 펀드의 실체와 정 사장의 사법 처리가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다.

▽해외법인 통해 펀드 유입 자금 조성 가능성=현대차그룹이 해외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해외에서 세탁해 국내 펀드에 투자했다는 구조다.

국내에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해외법인에 투자나 대여 명목으로 회사 자금을 보내면 해외법인은 이 자금을 손실 처리해 비자금을 만든 뒤 조세피난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세탁한 뒤 국내 펀드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그룹이 투자자금을 해외법인에 보낼 때 투자할 금액보다 돈을 더 보내 그 차액만큼을 비자금으로 빼내는 방법이 활용됐을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통로로 이용되는 해외법인은 현대차그룹이 기존에 설립한 해외현지법인이거나 새로 설립한 정 사장 소유의 위장법인일 수 있다.

비자금이 해외로 나갈 때는 현대차그룹이 제3의 인물 명의를 빌려 투자자금 명목으로 국내에 있는 현대차그룹 관계사에 돈을 보내면 이 회사가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돈을 보내 세탁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회사 자금이든 비자금이든 해외에서 세탁 과정을 거쳐 국내 펀드로 유입될 때는 모두 합법적인 투자자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따라서 윈앤윈21 등 5개 투자회사가 운용한 펀드는 외형에서는 정 사장의 개인 재산과 해외 투자자금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펀드는 비자금 증식 용도=현대차그룹이 계열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계열사 비자금 조성만으로는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액의 비자금을 만든 뒤 이를 종자돈으로 해서 비자금을 수배∼수십배 증식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이 자금을 그룹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하는 기아차 주식 10%를 확보하려면 6000억∼1조 원대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은 비자금의 증식을 위해 각종 투자정보를 은밀하게 펀드를 운용한 투자 회사에 제공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투자 회사들은 현대차그룹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 현대차그룹이 인수를 계획하고 있는 부실 기업 등에 투자한 뒤 막대한 이득을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

▽수사 전망=검찰은 지난달 26일 현대차그룹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펀드와 관련해 현대차그룹과 정 사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이미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투자회사 대표와 현대차그룹 임원들을 상대로 펀드 자금의 출처 및 조성 경위 등을 조사해 이 펀드가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인지 밝히는 데 수사의 초점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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