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취업’ 노조위원장의 相生 변신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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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자동차 이성재 노조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8월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을 이끌어 낸 뒤 닉 라일리 사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GM대우자동차 이성재 노조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8월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을 이끌어 낸 뒤 닉 라일리 사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6년 9월 대우자동차 직업훈련원 6개월 과정을 마친 26세의 젊은이가 정식으로 이 회사 조립 1부에 입사했다. 평범한 근로자로만 보였던 이 젊은이는 실은 3년 7개월 전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대학생’ 출신이었다.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이른바 ‘위장취업’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4월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1991년에는 노동쟁의와 관련해 1년간 실형을 살기도 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99년 복직했다. 하지만 2001년 대우차의 부도 여파로 정리해고됐다가 2003년 다시 복직하는 등 해고와 복직이 반복됐다.

대학 졸업 후 21년여가 흐른 2004년 10월. 40대의 중년이 된 ‘서울대 출신 위장취업자’는 GM의 대우차 인수로 출범한 GM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경력’에서 떠오르는 강경투쟁 대신 근로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조를 이끌었다. 그의 노력은 회사도 살고 직원도 사는 상생(相生)으로 이어졌다. 이성재(李成在·46) GM대우차 노조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 기자회견도 노사가 함께

GM대우차의 닉 라일리 사장과 이 위원장은 16일 인천 부평공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의 미래 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이날 회견에는 미(未)복직자 가운데 희망자 전원의 복직이 임박했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부평공장은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기 바로 전해인 2001년 경영난으로 전체 근로자 1700여 명을 정리해고 했다가 단계적으로 1000여 명을 복직시킨 상태다.

부평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이전까지는 나머지 복직 희망자가 모두 일터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GM대우차의 노사 공동 기자회견은 1967년 신진자동차(옛 대우차 전신) 노조 출범 이후 처음이다. 특히 GM대우차의 전신인 대우차 노조는 1980년대 ‘노동 운동의 메카’로 불릴 만큼 강경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 위원장은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세한 얘기는 기자회견장에서 하자”고 말했다.

○ 사상 최대 실적 이끌어 낸 노사 협력

GM은 2002년 7월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부평공장을 빼놓았다. 그러면서 부평공장 인수 조건으로 ‘노동쟁의 손실이 전 세계 GM공장의 2001년 평균 이하일 것’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부평공장은 대우인천차라는 위탁 생산업체로 전락했다. GM대우차와 대우인천차는 ‘2사(社) 1노조’ 형태가 됐다.

대량 정리해고의 아픔을 겪은 근로자들은 일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대우인천차가 살 길은 GM대우차와의 통합뿐이었다.

2004년 출범한 노조 집행부는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당선 이후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원을 만나 인사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주변에서는 ‘미리 결론을 내리고 밀어붙이는’ 과거 노조와 달리 ‘조합원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합리적 결론을 내는’ 이 위원장의 스타일이 노동운동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한다.

대우차 노사는 지난해 1월 합동 해맞이 행사로 화합을 다짐했다. 이날 이 위원장은 “과거가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면 앞으로는 노사 상생과 발전을 위한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의 ‘평화공존’은 지난해 8월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에 이어 같은 해 10월 GM의 대우인천차 인수로 결실을 보았다. GM대우차는 지난해 115만 대를 판매해 대우차 시절을 포함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이성재 GM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 경력

△1983년 2월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1986년 9월 대우자동차 입사(위장취업)

△1987년 4월 위장취업을 이유로 해고

△1991년 2월 민주노조 사수투쟁으로 구속돼 1년 실형

△1999년 9월 대우자동차 복직

△2001년 2월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2003년 7월 대우자동차 복직

△2004년 10월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 당선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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