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3세 경영권승계 ‘주가급등’이 새 암초로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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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경영인 주식 대박, 평가차익 수백억 원대…, 증시 활황에 대기업 3세들 신났네….’ 이달 초 이런 제목의 기사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 대기업 고위 임원 K 씨는 “속 모르는 소리”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테크 차원이 아니라 경영권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대주주 가족에게는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차익은 현실화할 수 없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완전한 승계를 위해서는 3세 경영인의 적정 지분이 필요한데 주가 급등으로 재원마련 부담만 커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K 씨는 “겉으로는 웃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올해 들어 주가가 크게 오르자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정리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기업은 적지 않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주가 급등은 증여나 상속세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의 암초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 재원마련 부담 커져 한숨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올해 2월 주식 350만 주(1.01%)를 주당 1만2570원에 사들였다. 전체 매입액은 440억 원.

정 사장은 11월에 추가로 340만4500주(0.98%)를 주당 1만8700원(총 636억6400만 원)에 사들였다. 비슷한 지분을 확보하는 데 9개월여 만에 소요비용이 196억 원가량이나 늘어났다.

기아차 주가는 이후로도 올라(22일 기준 2만6250원) 지분 1%를 사려면 이제 918억 원이 필요하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기아차 주가가 급등한 데는 정 사장의 지분 매입 효과가 가장 컸다”며 “앞으로 정 사장이 미래를 대비한 책임경영 차원에서 현대차 지분도 사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정 사장은 주가가 9만5000원대인 현대차 주식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지분을 늘려온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도 주가 상승에 따른 비용부담이 매년 늘고 있다.

1998년 4.06%를 보유할 때만 해도 2만 원대였던 주가는 지난해 1월 11만5000주(0.39%)를 매입할 때 26만2700원으로 올라 302억 원을 들여야 했다. 올해 9월에는 주가가 39만 원대까지 올라 불과 3만7600주(0.2%)를 더 사들이는 데 147억 원을 썼다.

○ 대부분 3세들 지분 확보 모자라

최근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홍보팀에 이색적 지시를 내렸다. 당분간 기업 홍보를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회사 안팎에서는 “3세 경영인이 아직 지분을 매입하지 않은 단계에서 주가가 너무 오르는 데 대한 부담감을 표출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상당수 그룹은 아직 ‘오너 3세’들의 지분 확보가 충분치 않은 상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65%(96만1573주)에 불과하다.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아들인 이해욱 부사장의 지분도 0.47%에 그친다.

효성그룹의 경우 조석래 회장의 큰아들 조현준 부사장만 ㈜효성 지분 7.37%를 보유하고 있을 뿐 차남 조현문 전무와 3남 조현상 상무는 아직 회사 주식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상선 과장도 비상장계열사인 현대U&I의 등기이사로만 등재돼 있을 뿐 별다른 주식이 없는 상태.

재계 관계자는 “3세들의 지분 확보를 둘러싼 논란으로 현재 대부분의 기업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주가가 너무 오르기 전에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3세들이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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