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임원들… 커피 맛을 잃었다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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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전자 계열사의 한 임원은 요즘 업무 시간 중에 물끄러미 창밖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삼성그룹은 내년 1월 초 임원 인사를 앞두고 요즘 ‘자기 평가’가 한창이다. 구조조정본부와 그룹 계열사의 임원 1100여 명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을 매기고 있다. 재계에서 임원은 ‘별’로 불린다. 승진을 할지, 현 보직에 머무를지, 아니면 퇴출당할지 기로에 서 있는 이들은 요즘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연말까지 실적을 하나라도 더 올리려고 사업부별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부 등기이사를 제외하고는 임기가 따로 없는 임원들은 한 해 성적이 잔류와 퇴출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기 때문이다.》

○ 일손 못 잡는 임원들

삼성그룹의 올해 실적은 전례가 드문 호황이었던 지난해보다 상대적으로 부진할 전망이다. 여기에 사회 일각의 반(反)삼성 기류도 있어 인사에서 적지 않은 변화도 예상된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 때문에 ‘별들의 전쟁’은 더욱 치열하다.

삼성그룹은 지금까지 이건희 회장의 생일인 매년 1월 9일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로 불러 이 회장 주재로 만찬을 함께했다. 이 회동이 있은 다음 주에 CEO 인사가 발표되고 이어 다른 임원 인사가 실시된다. 이 때문에 삼성 CEO들은 이 회동을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른다.

그룹 관계자는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10월 말이나 11월 초면 좌불안석인 임원들이 많다”면서 “하루 종일 일손을 잡지 못하고 담배만 축내는 임원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자꾸만 밖을 내다보는 ‘창안의 남자’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때쯤이다. 실적이 부진한 사업부서에서는 우울증에 빠지는 임원도 더러 있다는 말이 나돈다.

삼성은 올해 초 200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100여 명의 임원은 자회사나 외부로 나갔다.

○ 실적과 리더십 겸비해야

LG그룹은 최근 계열사별로 올해 사업 실적을 점검하고 있다.

이어 사장들은 내년 사업계획 수립과 함께 새 임원진을 꾸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임원 승진 포인트는 사업실적은 기본이고 리더십이 있는지를 살핀다. 실적이 뛰어나도 리더십에 문제가 있으면 승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LG그룹은 임원이 총 500여 명으로 올해 초 140명의 임원을 승진시킨 바 있다. 삼성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CEO에 대한 인사만 하고 계열사 임원 인사는 사장들이 결정한다.

정몽구 회장이 수시로 인사를 하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다른 그룹과 달리 연말 인사 폭은 덜한 편이다. 하지만 늘 “가시방석에 앉아 사는 기분”이라는 말이 적지 않다.

SK그룹의 임원 승진 시기는 다른 그룹보다 늦은 3월이다. 임원 평가는 자기평가와 상사평가, 관련부서 평가 등 3단계. 올해 SK㈜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계열사 실적이 좋은 편이라 승진 기대를 하는 임직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남영선 ㈜한화 화약총괄담당 사장과 정승진 ㈜테크노밸리 사장, 조창호 한화종합화학 사장 등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임원을 전진 배치시킨 한화그룹은 올해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LG에서 분가한 GS그룹은 주력인 GS건설과 GS칼텍스의 호황으로 내부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재계의 인사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연말까지 임원들의 고통스러운 나날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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