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 ‘개인비리’ 파장]현대 對北사업 도덕성 흔들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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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규(金潤圭·사진) 현대아산 부회장의 개인 비리가 표면화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사회적 관심을 끄는 것은 김 부회장의 ‘특별한 위치’와 금강산 관광사업의 특수성 때문. 그는 사실상의 민관(民官) 공동사업 성격을 띤 현대그룹의 대북(對北)사업을 실질적으로 지휘했고 남북한 당국 간의 막후 채널 역할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은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해임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이번 사건이 현정은(玄貞恩) 현대그룹 회장과 김 부회장의 내부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특정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해 비리의 온상이 됐다며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리 밝혀 놓고도 고민하는 현대

현대그룹과 정부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 회장은 지난달 중순 그룹 경영전략팀 사장을 겸임하는 최용묵(崔容默)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에게서 김 부회장에 대한 감사팀의 감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보고서에는 △금강산 옥류관 분점을 건설하면서 40억 원의 공사비 중 8억 원을 하도급업체에서 리베이트로 받아 이 돈을 이용해 친지 명의로 옥류관 지분 20%를 사들인 점 △북한 사업소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불법으로 갖고 나오다가 북한 당국에 적발된 점 등 김 부회장의 비리 혐의가 모두 포함됐다.

현 회장은 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직후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부회장의 비리가 8일 본보 보도로 공개되자 현대그룹 측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상황을 가급적 ‘축소’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지나친 압박을 가할 경우 있을 수도 있는 김 부회장의 ‘돌출 행동’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김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정부도 파악한 현대그룹의 감사보고서 내용을 보면 김 부회장이 계속 버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또 자연스럽게 현 회장의 ‘친정(親政) 체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사업 투명성 확보 시급

현대그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북사업의 불투명성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 부회장의 비리가 적발된 금강산 사업에는 2001년부터 정부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특혜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01년 6월 한국관광공사를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시키면서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을 대출해 줘 현대아산을 사실상 지원해 왔다.

관광공사는 2001년 6월 900억 원의 남북협력기금을 대출해 지난해 9월까지 이 자금을 모두 금강산 사업에 투자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온천장(355억 원), 문화회관(300억 원)을 인수했고 식당 겸 판매시설인 온정각의 지분 60% 등을 사들였다.

2004년 9월부터는 추가로 27억2000만 원을 금강산 지역의 도로 정비에 쓰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중고교생 금강산 체험학습 경비로 28억5000만 원이 남북협력기금에서 쓰였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돈’이 들어가는 북한 관광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南成旭) 교수는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을 독점으로 운영하고 있고 견제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필연적인 결과”라며 “남북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북사업의 추진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며 궁극적으로 대북사업도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정주영-몽헌 代이어 대북사업 보좌▼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사실상 총괄해 온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창업주의 ‘마지막 가신(家臣)’으로 통한다. 정 창업주가 작고하기 얼마 전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으로 자주 찾아가 점심을 함께하기도 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1998년 현대그룹 남북경제협력사업단장으로 대북사업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현대건설과 현대아산 사장을 지냈다.

2000년에 현대그룹 내에서 발생한 이른바 ‘왕자의 난’ 때는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편에 서서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맞섰다. 정몽헌 회장과의 인연은 정 회장이 현대건설 회장으로 취임한 1996년에 현대건설 상무로 보좌하면서 시작됐다.

김 부회장은 현 정부 출범 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불구속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5월 부처님오신날에 특별사면됐다. 이후 금강산 골프장 건설, 금강산 해수욕장 야영장 허가 등 현대그룹의 굵직한 대북사업을 지휘했다.

그는 올해 3월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나 윤만준(尹萬俊) 사장과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을 함께 맡는 등 그룹 내에서 서서히 위상이 약화됐다. 이어 개인 비리와 관련된 내용이 현정은 회장 등에게 전달됐고 내부감사를 받게 됐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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