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씨 별세]‘현다이’와 함께한 한국차의 神話

  • 입력 2005년 5월 23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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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헌화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빈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 경제개발을 이끌어 온 1세대 기업 선배”라며 “선배로서 더 지도를 해주셔야 하는데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합
이건희 회장 헌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빈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 경제개발을 이끌어 온 1세대 기업 선배”라며 “선배로서 더 지도를 해주셔야 하는데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합
《21일 오전 1시(한국 시간)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선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1985년 미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지 20년 만에 현지 공장을 짓고 준공식을 가진 것이다. 같은 시각 현대차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을 맡아 지금의 현대차를 키워낸 ‘포니 정’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독감이 폐렴으로 진전되면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준공식은 1시간가량 진행됐고, 이로부터 10시간 남짓 흐른 낮 12시 30분경 정 명예회장은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졌다. 자신의 분신이었던 현대차가 새 역사를 만든 바로 그날 그는 세상을 떠났다.》

○ 현대그룹과 인연 맺기

정 명예회장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 마이애미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정치인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맏형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1957년 12월 현대건설에 상무로 입사하면서 일생 동안 현대그룹과 인연을 맺는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간경화증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도 있었지만 1964년 ‘단양시멘트 공장’ 초대 공장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한국 최초의 해외건설공사인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다.

○ 포니 신화를 만들다

1967년 태국에서 얻은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귀국한 고인에게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동차를 맡아 달라”고 했다.

이해 12월 현대차가 설립됐고 정세영 명예회장은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그의 삶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이듬해인 1968년 현대차는 미국 포드자동차와 조립계약을 하고 1호차인 ‘코티나’를 선보였다. 기술 축적 기간이었다.

그러나 조립 생산에는 한계가 있었고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체 모델 개발이 반드시 필요했다.

1974년 10월 드디어 국산 승용차가 탄생했다. 첫 국산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였다. 아직 중진국 대열에도 합류하지 못했던 한국이 ‘포니’를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하자 세계가 놀랐다. 이후 그는 국제 자동차업계에서 ‘포니 정’으로 통했다.

포니는 1976년 1월 생산을 시작해 같은 해 7월 에콰도르에 처음으로 수출되면서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신을 바친 그의 노력으로 1976년 20여 개국에 불과했던 수출 대상국은 2년 뒤 2배(42개국)로 늘었고 수출 규모도 1019대에서 3년 뒤인 1979년에는 1만9204대로 급증했다.

○ ‘현다이’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차는 시련을 맞는다. ‘2차 오일쇼크’로 국내에서뿐 아니라 수출이 급격히 줄었다. 더구나 당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중화학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자동차 산업 포기를 종용하는 일도 겪었다.

이때의 위기를 넘긴 정세영 명예회장은 이후 신형 모델인 ‘포니Ⅱ’(1981년)와 2번째 고유모델인 ‘스텔라’(1983년)를 잇달아 선보였다.

198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현지 판매법인을 설립했으며 이듬해 본격 수출을 시작해 한 해 동안 18만6000대를 팔아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7년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차 회장에 취임해 현대그룹을 지휘하면서 자동차, 중공업, 전자, 건설 등 기간산업을 주력업종으로 육성했다.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독자 엔진과 구동장치를 개발해 ‘자동차 기술 독립’을 선언했다. 북미, 중동, 유럽은 물론 러시아 등 공산권 시장에도 진출해 현대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다.

○ 자동차를 떠나 역사가 되다

1999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은 정세영 명예회장을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 집무실로 불러 “몽구(夢九)에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라”고 지시한다.

평생 형의 명을 거역해 본 적이 없던 그는 그 자리에서도 “예”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분신이었던 현대차를 조카에게 넘겨준 대신 그는 현대산업개발을 넘겨받았다. 이후 경영은 아들 몽규(夢奎) 씨에게 맡기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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