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조직문화 들여다 보니

  • 입력 2005년 5월 10일 03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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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에서는 부하의 공을 가로채거나 회사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임직원은 견뎌내기 어렵다.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임원 발탁 시 업무 성과와 윤리성이 부딪칠 때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둔다고 한다.

또 ‘부부 동반 모임’이 잦으며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 사적 연고를 이용한 ‘인맥 쌓기’는 철저히 통제받는다. 이른바 명문대 출신의 프리미엄은 없다. 의외로 온정주의 문화가 적지 않다.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그룹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문화를 들여다봤다.

○ 비도덕성은 ‘공공의 적’

삼성 구조조정본부 감사팀은 최근 한 간부사원의 사내(社內) 불륜 사실을 제보 받고 은밀하게 뒷조사를 시작했다. 신용카드 지출 및 휴대전화 사용 내용, 사내 전자통신망까지 샅샅이 뒤져 증거를 잡아내 ‘자백’을 받았다.

결국 이 간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감사팀은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린다.

‘삼성맨’들이 승진 인사 때 적잖이 신경 쓰는 부분은 다면평가로 나타나는 부하직원들의 평가. 상사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더라도 부하직원들의 평가가 정반대면 순위에서 밀린다.

○ 모임은 ‘부부 동반’으로

이 회장은 그룹 임원들과 모임을 가질 때 부부 동반 형식을 선호한다. 부부와 함께 만나면 모임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뿐 아니라 끈끈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 지난해 말에도 이 회장 부부는 구조조정본부 임원들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해 가수 조용필 씨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관료 출신의 한 임원은 “공무원 시절에는 부부 동반 모임이 거의 없었는데 삼성에선 유난히 부부 동반 모임이 많다”면서 “이혼을 했거나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임원은 이런 모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 회식은 밤 9시가 마지노선

자체 회식은 밤 9시를 넘기는 법이 없다. 퇴근 뒤 회식 자리에선 앉자마자 폭탄주가 돌아가지만 술자리가 길어지는 경우는 없다.

금융 계열사의 한 임원은 “회식이 끝나 집에 들어가도 밤 9시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며 “이 때문에 가족들도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학교나 고향 물어보면 ‘푼수’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대한 프리미엄이 전혀 없다. 오로지 실력과 업무성과로 말할 뿐이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 사이에선 ‘역(逆)차별’ 불만도 없지 않다.

실제로 주요 계열사 임원 가운데 지방대나 비명문대 출신이 적지 않다. ‘K고 출신’이나 ‘S대 출신’이라는 모임도 삼성에선 안 통한다. 사내 전자통신망의 인물정보란에도 고향이나 출신학교는 적혀 있지 않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어느 대학을 나왔고, 고향이 어디인지를 물어보다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며 “같은 대학을 나온 동문들이 의기투합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 온정주의 문화도 많다

의외로 특별히 ‘사고’를 치지 않는 한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해고하는 사례가 드물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임원은 “내가 보기에 ‘저 정도면 정리해야 하는데…’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면서 “회사가 아주 어려워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업무성과 부진 때문에 잘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 번 발탁한 사람은 어지간해선 중도에 팽개치지 않는다는 이 회장의 인재관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대목이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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