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5주년]2차전지 또 하나의 ‘역전드라마’ 시작됐다

  • 입력 2005년 3월 31일 15시 24분


코멘트
《모바일 전자기기에서 반도체가 ‘두뇌’, 디스플레이가 ‘얼굴’이라면 ‘심장’은 어디일까? 정답은 2차전지다.

모바일 기기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동력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2차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일반 건전지)와 달리 충전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개인휴대단말기(PDA), 노트북PC 같이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에 들어간다. 전기를 동력으로 쓰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도 필수적이다. 그래서 2차전지 산업은 가장 중요한 차세대 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차전지 시장에선 일본 업계가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에 이어 다시 역전 드라마가 펼쳐질 것인가.

▽한일(韓日)전 3라운드=2차전지 가운데 주류인 리튬이온전지 시장은 올해 세계적으로 5조2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2008년 6조 원, 2010년 10조 원으로 커질 전망.

일본 업계는 1990년대 초반부터 2차전지를 생산하면서 세계 시장을 선점했다. 한국이 양산 체제를 갖추고 시장에 뛰어든 건 이보다 7, 8년 늦은 2000년경이다.

현재 세계 시장 1위와 2위는 일본의 산요와 소니. 각각 월 5000만 셀과 3000만 셀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업계는 “더 이상 역전은 없다”고 공언한다. 반도체와 LCD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하이닉스반도체 등에 추월당한 아픔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각오다.

한국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0년 2.5%에서 2001년 9.6%, 2002년 15.8%, 2003년 19.5%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25%에 이를 전망. ▽공격적으로 나선다=한국 업계의 대표주자는 삼성SDI와 LG화학. 두 업체는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생산 규모를 확대해 가며 일본 업계를 뒤쫓고 있다.

삼성SDI의 생산 규모는 월 2200만 셀 정도. 삼성SDI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이 정도 규모를 갖추는 데 10년 가까이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절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차세대 전지 부문에 올해 8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연료전지와 태양전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9년 1월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전지 대량 생산체제를 갖춘 LG화학도 고삐를 당기고 있다. 지난해 3월 충북 오창테크노파크를 완공한 데 이어 중국 난징(南京)에 월 400만 셀 규모의 신규 라인을 증설했다. LG측이 밝힌 생산 규모는 월 2600만 셀.

LG그룹은 최근 개최한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전지팩을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으로 육성해 나가기로 했다. LG화학은 현재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메이커의 컨소시엄과 함께 자동차용 중대형 전지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국내 다른 업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2002년 제일모직이 전해질 양산에 돌입해 2차전지 소재 산업에 진출했다. 동부한농화학 넥스콘테크놀로지 금호석유화학 셀트론 등도 설비 증설 움직임을 보이며 한일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리튬이온전지:

리튬이온전지는 노트북 PC에 쓰이는 원통형과 휴대전화 등에 쓰이는 각(角)형이 있다. 최근에는 겔 형태의 전해질을 사용한 리튬폴리머전지도 등장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 “3년뒤엔 2차전지 세계1위 자신”▼

“기초화학 기술 경쟁력이 곧 LG화학의 경쟁력입니다. 2008년에는 세계 1위의 2차전지 업체가 될 것입니다.”

LG화학 노기호(사진) 사장은 “2차전지를 생산하는 데 정보기술(IT)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학기술”이라며 “화학기술 부문에서 LG화학의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차전지는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분야. 최근 LG화학은 일본 업체에 앞서 고용량 원통형 전지를 개발했다.

차세대 전지로 알려진 연료전지는 2000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올해 노트북컴퓨터용 시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노 사장은 “LG화학의 연구개발 역량은 2차전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연료전지용 촉매에 해당되는 전극막접합체(MEA) 등 첨단 소재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외에도 디스플레이 소재인 초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용 편광판(빛의 파장을 걸러 통과시키는 소재)과 각종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화학과 IT의 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셈이다.

▼김순택 삼성SDI 사장 “이젠 품질로 日업체 따라잡겠다”▼

“10년 넘게 일본 업체가 2차전지 시장을 독식했습니다. 이제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 이들을 따라잡을 생각입니다.”

삼성SDI 김순택(사진) 사장은 ‘품질’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 등의 ‘모바일 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2차전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아직 국내 2차 전지 산업은 일본에 뒤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현재 2차 전지 분야는 일본의 산요, 소니와 한국의 LG화학, 삼성SDI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에 있어서는 일본 기업이 앞선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삼성SDI가 기술력에서 앞서는 일본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연료전지, 태양전지 등 차세대 청정 전지 개발이다.

이 분야 역시 일본에 뒤져 있으나 전동공구,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등 ‘타깃 제품’을 선정해 특화된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것. 그는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사장은 “신규라인 증설도 검토하면서 신소재 및 차세대 전지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연료전지 등 차세대 산업 주력”▼

“폴더형 휴대전화의 개발은 휘어지는 회로판인 연성회로기판(FCCL)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제일모직이 만들고 있는 첨단 전자소재죠.”

제진훈(사진) 제일모직 사장은 섬유, 의류, 화학, 첨단 소재 등 연관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제일모직이 변신을 거듭해 왔다고 설명했다.

작년 제일모직은 미국 듀폰사와 함께 합작회사를 세웠다. 기술을 이전받고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제 사장은 “기술 확보를 위해 외국의 선진기업을 찾아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외국에서 먼저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에 소재를 공급하기 위해 삼성 계열사인 제일모직이나 LG 계열사인 LG화학으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IT 기업의 성공이 한국 첨단소재 산업의 위상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핵심소재를 국산화하면 연간 1조∼3조 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한다”며 “앞으로 연료전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산업에 주력해 국가 경제의 주축이 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