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탑산업훈장 받은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사장

  • 입력 2005년 3월 27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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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제32회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상공인으로 선정돼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대우인터내셔널 이태용 사장. 1999년 ㈜대우 무역부문을 분리해 사장에 취임한 이 사장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적극적인 해외 자원개발 노력으로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놨다. 사진제공 대우인터내셔널
16일 제32회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상공인으로 선정돼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대우인터내셔널 이태용 사장. 1999년 ㈜대우 무역부문을 분리해 사장에 취임한 이 사장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적극적인 해외 자원개발 노력으로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 놨다. 사진제공 대우인터내셔널
“막막했습니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태용(李泰鎔·59)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될 당시 상황을 이같이 회고했다. 대우그룹이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대우 사태’ 때 대우자동차 부사장(수출부문장)으로 있던 그는 우리은행 등 ㈜대우의 채권단협의회 요청으로 99년 12월 당시 ㈜대우 무역부문 사장을 맡게 된다. 당시 대우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잡았던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이 사장에게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대우에서 무역부문만 떼 내서 좋은 회사로 만들어라”고 주문했다.

암담했다. 2000년 12월 27일 ㈜대우에서 건설부문을 남기고 회사를 떼어낼 당시 회사 빚이 1조1551억원, 부채비율은 940%. 갖고 있는 현금이라곤 888억 원뿐이었다. 사실상 ‘빈껍데기’ 회사였다.

“2가지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캐시플로(현금흐름)’와 이익창출.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장은 우선 거래처와의 외상거래는 모두 끊었다. “이익을 안 내면 역적이다.”

뼈아픈 구조조정으로 비용도 줄여나갔다. 갖고 있던 중국 이동통신법인과 우크라이나 이동통신법인, 파키스탄 운수법인, 부산 공장부지 등 돈 되는 것은 다 팔아치웠다. 눈물나는 구조조정 과정이었다. 99년 1307명이던 직원도 820명으로 줄었다.

회사는 2002년 순이익 784억원을 내 흑자로 돌아섰다. 2003년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에서 벗어나고 작년엔 자산 1조6230억 원, 매출 5조172억 원, 순이익 1141억 원을 냈다. 올해 3월 현재 부채비율은 142%로 낮아졌다.

이 사장은 지난해 1월 15일 미얀마 가스전에서 터뜨린 ‘대박’의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한다. 해외 자원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고 투자에 나선 성과가 드러나는 순간.

“사장님, 드디어 나왔습니다.”

천연가스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추정 매장량 4조∼6조 세제곱피트. 액화천연가스(LNG)로 치면 8000만∼1억2000만 t에 이르는 ‘보물덩어리’다.

이 투자로 2010년부터 20년 동안 매년 1000억∼1500억 원의 배당금을 회사에 안겨주게 된다.

돈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는 이 사장. 그는 지난해 107일 동안 해외 출장을 다녔다.

16일 32회 상공인의 날에 모범상공인으로 뽑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6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후 30년 동안 국제무역과 해외투자 해외 자원개발에 매달린 지 30년이 흘렀다. 대우의 옛 명성을 찾았다는 기쁨에서였을까. 상을 받으면서 웃음을 머금었지만 속으론 눈물을 삼켰다.

이 사장과 인터뷰를 한 1주일 뒤인 24일. 기자는 서울역 앞에 있는 대우빌딩을 다시 찾았다.

오후 10시. 이 사장은 160명의 해외 투자법인 지사장과 영업팀장을 모아 놓고 오전 9시부터 마라톤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늦은 밤 대우빌딩 5층 회의실은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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