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영업자 자활자금 대출…실효성은 의문

  • 입력 2005년 3월 23일 0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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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은행권과 협의해 마련한 신용불량자 대책의 핵심은 경기침체로 벼랑 끝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 등 생계형 신용불량자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득을 가진 일반 신용불량자들과 달리 빚 상환을 미뤄 줘도 일정한 소득이 생기지 않는 한 또다시 불량채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계층이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이 바람직한지, 실효성은 있는지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은행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예상된다.

▽핵심은 영세 자영업자 추가 지원=정부와 은행권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신용불량자 구제 대책을 실시했지만 신규 대출을 해 준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신용회복위원회와 배드 뱅크를 통해 구제 받은 신용불량자는 매월 일정한 소득이 있어서 채무재조정을 통해 상환 기간을 늘려 주면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은 수입이 턱없이 부족해 채무재조정만으로는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와 은행권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논란을 감수하며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추가로 자금을 지원키로 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공익적 성격이 강한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극빈층이나 저소득층에 자활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주는 무담보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은행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신용회복위원회에서 기존 채무에 대해 빚 상환 유예를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추가대출을 신청하면 20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개 은행에만 빚을 지고 있는 자영업자는 해당 은행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기존 채무의 상환유예와 함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지원조건은 은행마다 약간 다르다. 대출 한도는 2000만 원으로 같지만 금리는 대체로 연 6∼8%이며, 신한은행이 최저 연 5%로 가장 낮다. 상환 기간은 최장 10년 6개월이다.

정부는 또 생계형 신용불량자 가운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자산관리공사에 은행들의 채권을 모은 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서 벗어날 때까지 빚 상환을 미뤄 주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기초생활보호대상자들은 일단 빚 독촉에서 벗어난다.

정부는 다만 무분별한 지원을 막기 위해 지역봉사, 자활근로, 직업훈련 등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가정형편 등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이나 청소년들은 취업을 통해 자립할 때까지 빚 상환을 유예받는다.

▽실효성 있을까=전문가들은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생계형 신용불량자 중 얼마만큼이 자활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창균(朴倉均) 연구위원은 “대부분 음식 숙박 영세소매업에 종사하는 생계형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수익성이 낮은 산업에 너무 많은 종사자가 몰려 있기 때문”이라며 “영세 자영업의 근본적인 구조조정 없이 은행이 돈을 지원하는 것은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용불량자 지원을 위한 부담을 사실상 은행이 떠안는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허창수(許昌秀) 교수는 “경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성을 가진 은행이 모범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 “하지만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회복지 정책을 민영은행에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은 신용불량자에 대한 추가 대출은 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추가 지원 여부를 두고 지금도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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