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간부 전경련체험 1년 “현장서 본 기업 이래요”

  • 입력 2005년 3월 15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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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윤 국장
신제윤 국장
《“현장에서 직접 기업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보니 제가 정부과천청사 책상에 앉아 생각하던 것과는 세상이 많이 달랐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공무원 신분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신제윤(申霽潤·47) 재정경제부 국장.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회관 2층 집무실에서 만난 신 국장은 1년 가까이 산업 현장에서 느낀 기업경영과 한국경제에 대해 소감을 털어놓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24회 수석 합격. 청와대 정책실 근무. 재경부 핵심과장인 금융정책과장 역임.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잘나가는 경제관료’로 꼽히는 그는 민간 분야에서 보낸 1년간 무엇을 보았을까.》

▽대기업 호황, 중소기업 불황 이유는?=“최 기자. 지금 수출이 잘되는 대기업은 돈이 철철 넘쳐나는데, 중소기업엔 왜 찬바람이 쌩쌩 부는지 아십니까?”

신 국장은 스스로 물은 뒤 “제조업을 경영하는 대기업 임원들을 만나보니 가격에 비해 품질이 안 좋아 국내 중소기업의 부품을 믿고 쓸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털어놓더라”고 전했다.

대기업이 만든 완성품이 잘되면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도 덩달아 잘되는데 그 열매를 국내 기업이 아닌 외국 회사가 따 먹는다는 것이다.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기술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간판기업이 생산하는 휴대전화와 가전제품의 부품은 대부분 일본이나 동남아 등 외국에서 수입한 제품이라고 했다. 따라서 대기업이 아무리 잘해도 중소기업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별로 없는 게 기업 현장의 현실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원화가치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을 막아 생긴 이익도 대부분 대기업 몫으로 돌아가고, 중소기업은 철저히 소외돼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핵심사업으로 몸집을 줄였지만 중소기업은 기술은 제자리인 채 인건비만 높아져 가격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울리는 대기업=그러면 모든 책임은 중소기업에 있을까. 신 국장은 중소 하도급 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가 의외로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름만 대면 어디인지 알 만한 한 국내 대기업의 사례를 들어 볼까요.”

이 회사의 수출이 잘된 덕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하도급 업체도 함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도급 업체가 이익을 많이 내자 그 대기업은 납품가를 절반으로 뚝 깎아버렸다. 자신들 덕분에 잘되니까 이득을 나눠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신 국장은 중소기업을 동반자로 삼아야 할 대기업이 이런 불공정한 횡포를 부리는 현실을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여러 차례 들었다. “중소기업이 밤을 새워 특허를 따 놓으면 납품을 받는 대기업은 이를 헐값에 팔라고 한답니다. 안 그러면 납품업체를 바꾼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는 거죠.”

하지만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중소기업 부품을 대기업이 의무적으로 할당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장을 너무 모르는 소리”라고 걱정했다.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 법을 억지로 만들어 정부가 할당하는 식으로 개입하면 대기업들이 모두 외국으로 도망갈 겁니다. 한국에선 도저히 기업을 못해먹겠다고 하면서….”

신 국장이 느낀 또 하나의 좌절감은 해외 글로벌기업을 상대해야 할 국내 대기업 사이에 지나치게 ‘서로 따라 가기’ 관행이 퍼져 있는 현실. ‘리딩 컴퍼니’(선도 회사)가 하도급 업체를 압박하면 얼마 안 있다가 2위 업체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이 비일비재했다.

▽공정위는 ‘생색 안 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라=신 국장은 최근 대형할인점 업체에 대해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일수록 더 하더라고요. 입점 업체가 정말 눈물나게 당하고 있습니다.”

신 국장은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폼 나는’ 일을 위주로 하려다 보니, 할인점 입점 업체의 어려움 같은 것에는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아요. 일만 많고 별로 생색이 안 나거든요.”

대기업 중심의 규제정책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중소업체의 애환에는 공정위가 귀를 덜 기울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과천에서 일할 때는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중소기업 보증 서다가 돈을 떼이는 것을 보면서 분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180도 달라졌어요. 중소기업 기술투자에는 정부가 돈을 써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이 클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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