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멋]“공장김치 맛도 ‘손끝’에 달렸네”

  • 입력 2004년 11월 8일 16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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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종가집 횡성공장에 김치투어를 온 주부들이 직접 ‘속넣기’ 작업을 하고 있다. 횡성=정재윤기자
두산 종가집 횡성공장에 김치투어를 온 주부들이 직접 ‘속넣기’ 작업을 하고 있다. 횡성=정재윤기자
《깊어가는 가을날. 형형색색 저마다의 색깔로 짙게 물든 나뭇잎의 숲을 따라 강원도 시골의 한 공장을 찾았다. 강원 횡성군 묵계리 ‘두산 종가집’ 횡성공장. 1987년 12월 설립된 이 공장은 18년째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400여명의 직원들이 하루 80t의 김치를 만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김치공장.》

○ 김치는 반도체?=기자는 이날 공장을 찾은 주부 40여명과 함께 공장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공장 2층 복도에 견학을 위한 유리창이 만들어져 있어 창을 통해 아래 공장의 작업 현장을 볼 수 있다.

한 주부가 “햐, 무슨 반도체 공장같이 직원들이 하얗게 뭘 뒤집어 쓰고 있나?”라고 묻는다.

자세히 보니 공장 안의 직원들은 모두 위생모자, 마스크, 작업복, 장화, 장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하고 있다. 공장 내부는 청결구역이라 일반적인 복장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

○ 공장 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김치공장에서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집에서 담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절임, 세척, 탈수, 다듬기, 속넣기, 포장, 숙성, 유통의 단계를 거친다.

배추는 산지에서 이미 겉잎은 제거돼 들어온다. 공장에 들어온 배추는 18∼20시간 저염수에서 절여진다. 이 과정에서 청정수와 천일염이 배추에 스며들면서 아삭거리는 맛이 난다는 것.

절임이 끝나면 4번에 걸친 세척작업이 있다.

기계화된 ‘자동세척기’는 마치 목욕탕 사우나처럼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물이 순환하고 있다. 안에서 배추 이파리들이 씻겨진다. 횡성공장 이동관 공장장은 “세제 등은 전혀 쓰지 않고 지하수만을 이용해 소금기와 배추 속에 남아있는 벌레나 돌 등의 이물질을 제거한다”고 설명한다. 양념을 골고루 배추에 묻히는 속넣기 작업은 ‘손끝 맛’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 공장장은 “공장 주부사원들의 평균연령이 43세로 10년 이상 김치를 담가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주부사원들의 손끝 노하우가 종가집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 김치맛은 배추맛=공장지원팀 송세용 팀장은 “김치맛은 배추의 당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육질이 좋고 싱싱한 배추를 고르는 것이 김치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배추의 주 공급처는 계약재배 농가이다. 대부분의 배추가 계약재배 농가 또는 지역 농협에서 공급된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며 온도에 대한 적응범위가 대단히 좁은 작물. 자라는 데 가장 좋은 온도는 18∼21도. 5도 이하나 23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생육이 멈춘다. 봄가을에는 재배되는 지역이 넓고 출하량도 충분해 배추값이 싼 것은 이 때문. 겨울에는 대부분 전남 해남에서 배추를 공급받는다.

문제는 여름. 여름에는 강원 영월 정선 등의 고랭지에서 100% 배추를 공급받는다. 올해는 병충해가 많고 지난해 배추농사에서 재미를 못 본 농가들이 배추를 많이 심지 않았다. 날씨도 너무 더워 수확량은 더욱 줄었다. 11월 현재 배추의 산지 공급가격은 5t 분량이 100만∼150만원선. 올여름 한창때는 600만원까지 뛰었다.

송 팀장은 “배추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거래처에서는 물건 보내달라고 난리고 ‘팔수록 손해가 나는 죽도록 땀나는 여름’이었다”고 회상한다.

○ 김치 투어=공정을 둘러본 고객들은 ‘실연실’이라는 곳에서 직접 ‘속넣기’ 작업을 하며 김치를 만들어볼 수 있다. 기자도 주부들과 함께 참여해봤다.

실연실도 청결구역. 들어가기 전에 작업모와 작업복을 입고 앞치마까지 걸친 뒤 ‘에어사우나’에 들어갔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면서 온몸의 먼지를 털어낸다고.

실연실 안에 들어가니 손을 씻고 알코올로 다시 손을 소독한 뒤 장갑을 낀다.

이미 절여진 배추에 완성된 양념을 골고루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었지만 보는 것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양념은 골고루 바르고 무는 안쪽에 가지런히 모아지도록 발라야지요.”

주부사원은 총각 기자의 손놀림이 영 불안한지 계속 잔소리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주부 이선명씨(54·서울 중구 신당4동)는 “집에서 만드는 것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공장 운영이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위생적이어서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온 딸 홍영씨(27)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김치를 주로 사먹었는데 직접 만들어보니까 재밌다”라며 “생각보다 김치 담그는 것이 힘들어 앞으로도 계속 사먹어야겠다”며 웃었다.

이날 김치를 처음 담가본 기자도 홍씨의 의견에 동감했다.


횡성=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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