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아직도 ‘기회의 땅’인가]中진출 외국기업 잇단 ‘U턴’

  • 입력 2004년 8월 23일 18시 55분


코멘트
중국은 한국경제에 막대한 무역흑자를 안겨다 주고, 한국기업에 저임금(低賃金)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의 땅’이란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투자에서 실패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전문가들은 “철저한 준비 없이 중국에 진출했다가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통상압력이 점차 거세지는 상황이어서 중국변수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력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휴대전화 부품업체인 A사는 최근 1억원을 주고 구입한 경유 발전기를 중국 광둥성 둥관(東莞)의 현지 공장에 긴급 공수할 예정이다. 중국의 전력난이 심각해 매주 이틀씩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생산라인을 제대로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A사 관계자는 “중국 전력난으로 공장 가동률이 80%로 떨어졌다”며 “생산량 감소와 납기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발전기로 현지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장성 지역의 전력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부터 전력 사정이 악화되면서 정전이 잦다는 것. 최근 여름철 전력 사용이 늘어나면서 하루건너 한 번꼴로 정전이 되고 있다는 게 현지 진출 한국기업들의 얘기다.

따라서 자체 발전기가 없는 영세한 공장은 꼼짝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휴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송창의 한국무역협회 상하이 지부장은 “전력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에 투자할 때는 자체발전기 구매 비용을 원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실패하는 기업이 늘어난다=통신장비회사인 B사는 2002년 중국 현지 파트너인 C사와 50 대 50 지분으로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회사설립은 6개월 동안 순조롭게 진행됐다. B사는 C사를 전적으로 신뢰, 협상이 완료되기도 전에 장비까지 들여왔으나 C사가 이사회 구성을 놓고 당초 입장을 번복하면서 갈등이 벌어졌다.

특히 C사는 장비를 들여올 때 통관수속을 비정상적으로 했던 B사의 약점을 가지고 협박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국 진출 국내 기업의 철수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투자초기인 1995년까지만 해도 누계 비중으로 투자 건수 대비 철수 건수 비율이 0.71%에 불과했으나 1999년에는 2.24%로, 지난해에는 2.40%로 증가했다.

화학회사인 D사도 최근 중국 내에서 ‘중국 국산품 사용하기’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매출이 크게 줄자 아예 철수를 결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 업체는 품질에 상관없이 중국제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경쟁도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고 전했다.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위험하다=중국 수출 비중이 높았던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는 이미 ‘중국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중국 수출 비중이 높았던 세원텔레콤, 텔슨전자 등은 최근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각각 법정관리와 화의에 들어갔다.

중견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 관계자들은 “중국측 바이어들이 처음에 무리하게 주문을 낸 뒤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식으로 주문량을 줄이고 가격 인하를 요구한다”며 “재고 부담과 투자금 회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낮춰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중견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인 KTC텔레콤은 올해 상반기부터 한때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던 중국 수출 비중을 40%대로 낮추고 중동,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카메라폰 등 첨단 제품을 제외하고는 중국 기업과 가격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내 투자여건이 예전만 못하면서 제3국으로 돌리는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 백열램프를 수출하고 있는 우리조명은 2002년 해외 생산 공장을 베트남에 세웠다. 중국과 베트남을 저울질하다가 15년간 토지 무상 임대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베트남으로 결정한 것.

이 회사 강성현 계장은 “중국의 인건비 상승세와 전력난 등을 감안할 때 베트남 투자가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며 “베트남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데다 베트남 정부가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외국기업의 경우…日 캐논-소니 일부사업 철수▼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00년 408억달러에서 지난해 535억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 중 55%가 적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국기업들이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최근 외신보도들은 전하고 있다.

유럽의 하수처리업체인 템즈워터는 올해 6월 상하이에서 운영하던 오수처리 공장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상하이시측과 연간 15%의 고정 수익을 보장하는 내용의 계약을 했는데 중앙정부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트럭업체는 중국 합작 파트너사의 ‘지나친 낙관’ 때문에 공장을 너무 크게 짓는 등 과잉투자를 했다가 최근 낭패를 봤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구조조정을 하려고 했으나 중국 정부의 규제 때문에 이 또한 쉽지가 않았다.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글로벌 경영시스템과 중국 사정에 모두 정통한 30, 40대 팀장급 인력이 태부족이어서 이들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는 최근 중간 간부급 현지인을 채용하려고 했으나 본사가 책정한 연봉 상한선의 3배나 요구하는 바람에 채용하지 못했다.

아직도 현지에서 생산한 부품의 품질이 떨어져 수입관세와 물류비용 등 추가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본국으로 U턴하는 기업들도 많다. 일본의 캐논은 지난해 2월 중국에서 생산해오던 일부 제품을 앞으로 일본에서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소니도 최근 중국의 비디오카메라 공장을 일본으로 옮겼다.

일본의 제조업체 413개사 중 16개사가 최근 1년간 생산거점을 해외에서 일본으로 옮겼는데 이중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돌아온 기업이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남영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전문가 진단…투자환경 개선 서두를때▼

한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중국은 낮은 인건비와 거대한 내수 시장 등을 내세워 세계 기업들의 직접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이 마냥 ‘기회의 땅’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해서 이윤을 남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의 인건비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낮지만 최근 상승 속도가 만만치 않다. 높은 사회보험성 임금 부담과 낮은 노동생산성을 고려하면 저(低)임금의 매력도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전력난과 용수난 등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실한 생산 인프라가 조업 차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중국의 불투명한 기업거래 관행, 원부자재 조달의 어려움, 숙련공이나 전문 인력의 구인난 등의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이 보따리를 싸서 한국으로 철수하는 현상도 이 같은 투자 환경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중국의 투자 환경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위한 가격 경쟁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국내 제조업 공동화와 고용 부진 등을 낳고 있는 대중국 투자의 득실을 기업과 정부가 냉정히 따져봐야 할 때다.

기업들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내 투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중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한국 기업에 혹독한 시련을 주고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남영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