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유예기간중 회수한 채권 구조조정 기업에 돌려주라”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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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채권을 회수했을 경우 이를 해당 기업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다른 금융기관들은 해당 기업을 살리려고 채권 회수를 자제하는데 ‘나 혼자만 살겠다’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것. 이에 따라 부실징후기업의 자율적인 회생을 막는 걸림돌로 지적된 ‘채권금융기관들의 채권 회수 행위’에 사실상 제동이 걸렸다.》

▽구조조정 기업 울리는 채권 회수 쐐기=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부장판사 이원규)는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가 D증권사를 상대로 낸 환매자금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SK글로벌은 채권단협의회 소집이 통보된 이후인 지난해 3월 18일 경영 정상화를 위해 D증권사에 맡겨둔 수익증권 290억원의 인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D증권사가 전액 인출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SK글로벌의 회사채 194억원과 맞바꾸고 남은 금액만 돌려주자 “채권단협의회 소집 통보 이후 인출을 요구한 수익증권과 회사채를 상계 처리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른 채권금융기관도 상계 형식으로 채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채권단협의회 결의 내용을 기다리기 위해 행사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협의회 소집 통보 이후 채권 행사의 법적 효력은 협의회 결의에 구속을 받는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채권단협의회 소집이 통보된 이후 ‘채무유예기간’에 회수된 채권이라도 채권단협의회의 채무유예 결정에 따라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소송 부추기는 기업구조조정 제도=2001년 9월 도입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채권단협의회 소집이 통보되면 금융감독원장은 채권단협의회가 열리는 날까지 채무유예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금감원장의 채무유예 요청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명확하지 않아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SK글로벌 사태 때도 금감원장이 요청한 채무유예기간(지난해 3월 12∼19일)에 일부 채권은행들이 SK글로벌이 맡겨둔 외화 예금과 대출금을 맞바꾸는 식으로 850만달러의 채권을 사실상 회수해 채권단협의회와 갈등을 빚었다.

한 시중은행 기업개선 관련 담당자는 “채권단협의회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채권을 회수하는 행위는 ‘나 혼자만 살겠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 이명훈(李明勳) 사무국장은 “채무유예기간에 벌어지는 채권 회수 행위가 문제가 될 경우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D증권사는 이번 법원 판결에 불복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제정 과정 등을 검토하며 항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이번 논란은 ‘2차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2001년 9월부터 기업의 신용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채무액 500억원 이상의 부실징후기업의 자율적인 회생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시행된 법. 기업과 은행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시행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제도와 달리 채권단협의회에 참가하지 않은 반대 채권자에게도 채권단협의회의 결의가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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