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학회 석학들 “노조 경영참여, 法보다 타협 먼저”

  • 입력 2004년 6월 23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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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국제노사관계학회 아시아대회에서 참석자들은 국가별 실정에 맞는 노사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보스턴대 피터 도린저 교수(오른쪽)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강병기기자
2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국제노사관계학회 아시아대회에서 참석자들은 국가별 실정에 맞는 노사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보스턴대 피터 도린저 교수(오른쪽)가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강병기기자
노사관계 분야의 국제 석학(碩學)들은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 요구는 법적인 강제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타협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무조건 취업자 수를 늘리는 실업 대책보다는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노사관계학회는 2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본보 후원으로 ‘국제노사관계학회 제5차 아시아 대회’를 열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고용관계의 역동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30개국 500여명이 참여한 이날 대회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적 현실에 맞는 노사정책과 노사모델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제노사관계학회는 노동시장에 대한 연구와 국제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로 세계 최대 노사관계 관련 학회다.

‘하투(夏鬪)’를 앞두고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한국의 노사가 참고할 만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요약 소개한다.

▽‘노조의 경영참여’ 법적 강제는 안돼=‘노사관계의 유럽화’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만프레드 바이스 교수는 “유럽연합(EU) 안에서도 회원국간 차이가 가장 큰 부분이 노조의 경영참여 허용 여부”라며 “특정한 모델에 따른 단일한 노사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EU는 유럽직장협의회지침(1994년), 유럽법인에서의 근로자 참여에 관한 지침(2001년), 국가 차원의 정보 제공 및 협의를 위한 최소규정에 관한 지침(2002년) 등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는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법적 장치가 아니라는 게 바이스 교수의 주장이다.그는 “EU는 2002년 지침을 통해 근로자들이 회사의 정보를 제공받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제시했지만 이 지침은 각 회원국이 자국 상황에 맞게 적용할 것을 전제로 한다”고 덧붙였다.

또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와 노동자가 국가별로 나름의 절차와 관행에 따라 관련 절차를 정비하고 △노사의 대표 기관들이 입법 과정에서 활발한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업 대책은 ‘노동의 질’ 향상에 초점=미국 보스턴대 피터 도린저 교수는 특별 강연에서 한국의 실업 대책은 취업자 수를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사관계의 한 축인 실업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저임금 근로자를 늘리기보다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여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임금 상승→구매력 증가→경기 회복→실업 감소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 노동계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미국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미국 노사간의 협력과 갈등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교훈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훈련 실효성 높여야=노사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강조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토머스 코칸 교수는 “한국의 직업훈련부담금 제도는 근로자가 평생학습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데 실패했다”며 “대다수 기업은 자사 근로자들에게 다양한 훈련을 제공하기보다는 분담금만 지불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주가 근로자에게 적절한 교육을 시켜 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근로자나 노조가 직업훈련부담금 사용에 있어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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