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도대체 왜 만들었나

  • 입력 2004년 5월 4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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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7일 발효된 ‘도서정가제’(문화관광부 제정 ‘출판 및 인쇄 진흥법’ 22조)가 시행 1년을 넘기면서 소비자와 일반 서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책값은 여전히 뛰는 데다 일반 서점들은 줄지어 문을 닫고 있다. 또 인터넷 서점들은 출혈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무리한 책값 경쟁은 한 나라의 지적 인프라인 출판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므로 이를 막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도서정가제가 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파행적인 법 집행=도서정가제는 당초 인터넷 서점에 한해서 10% 할인이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규제개혁위원회가 인터넷 서점들에 대해 ‘특별한 마일리지 규제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함으로써 도서정가제는 2개월여 만에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지난해 5월 열린 규개위 회의에서 문화부는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해서는 사실상의 할인혜택인 마일리지나 쿠폰제도를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산업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측이 “마일리지 규제는 자율경쟁시장에 위배된다”고 주장해 문화부 안이 밀렸다.

▽할인은 해 주지만 책값은 상승=현재 인터넷 서점들은 10% 가격 할인에 마일리지를 최대 20% 안팎까지 부여하고 있다. 할인폭이 마일리지보다 많던 과거에 비해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된 것이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출판사들이 할인폭을 감안해 ‘거품 가격’을 책정하는 측면이 있으며 이 부담은 결국 독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서점들의 할인경쟁이 치열하던 2002년 한 해 동안 책값 상승폭은 1995∼2001년 7년 동안의 인상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올해 들어 독자들이 체감하는 책값 상승률은 매우 높다. 특히 중고교생 참고서의 경우, 특별한 내용 변화 없이 지난해보다 최대 80%까지 값이 뛰었다.

▽인터넷 서점 출혈경쟁과 일반 서점의 폐점=할인경쟁으로 인터넷 서점들은 출혈을 자초하고 있다. 한국출판연구소의 박호상 연구원은 “누적적자가 100억원을 넘어선 곳도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독자들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서점의 경우 피해는 더 크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98년 4888개였던 전국의 서점이 2002년에는 절반 수준인 2319개로 줄었다. 올해 들어서만 서울에서 42곳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

이창연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은 “도서정가제는 일반 서점의 발목만 잡고 인터넷 서점에는 적용되지 않는 불공정 룰”이라며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넘기면서 ‘우연한 독서의 기회’를 갖는 풍경들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의 미래=프랑스 독일은 도서정가제를 법으로 만들었으며, 일본은 탄탄한 유통 관행 덕분에 도서정가제가 유지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할인이 전혀 없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서점 유통망인 북새통의 김영범 사장은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마일리지를 5% 정도까지만 허용하는 게 적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대표적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은 “인터넷 서점과 쇼핑몰은 그 존재특성상 갖가지 방식으로 책값 할인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이미 대세가 된 할인경쟁을 규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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