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멋]“옷과 通해야 진짜 모델”…패션쇼 무대뒷이야기

  • 입력 2004년 3월 31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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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는 세 번 접어서 목에 한 번 감아 깃을 2cm 보이게 한다. 윗단추 3개는 풀고 바로 밑의 단추는 절반만 채운다. 고객을 위해 마련한 뷔페 스푼의 무게는 20g을 넘지 말아야 한다.’ 패션·뷰티 쇼에 대한 ‘그들’의 단상이다. ‘패션쇼’ 하면 인형같이 긴 다리의 모델, 길거리에서는 입고 다니지 못할 전위적 옷, 현란한 조명 등을 떠올리는 일반인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들은 쇼를 기획하는 사람들. 샤넬 구치 크리스티앙디오르 아르마니 같은 명품 브랜드들은 한국에서도 일년에 두 차례 정도씩 쇼를 연다. 쇼 기획자 중 톱클래스급 3인이 3월 말 청담동 카페 ‘알레’에 모여 무대 뒷이야기를 나눴다.》

방담에는 PR게이트의 안현서 팀장, 에스팀의 김소연 실장, 위즈플랜의 강지원 실장이 참가했다. 경력은 10∼14년 됐으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베테랑급에 속한다. 민감한 이야기도 털어 놓기 위해 대화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VIP 마케팅=“내 생각엔 명품 시장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 예전에는 이름을 알리기 위한 행사가 많았잖아. 이제는 인터넷만 들어가면 금방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만큼 명품이 대중화됐지. 해외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데도 한국에서 명품을 사는 사람들은 서비스 때문이거든. 백화점마다 VIP룸을 따로 두고 10여명 초청해서 특정 브랜드 패션쇼를 열고, 현장에서 주문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요즘 시대가 그렇듯이 명품도 20 대 80이 확실히 적용되지. 소수가 매출을 올려주기 때문에 주문생산이나 소수를 위한 쇼도 많잖아.”

“일단 정성을 들여 마니아로 만들면 그만큼 수익이 생기니까.”

“한 번은 한 사람만을 위한 패션쇼를 한 적이 있어. 그 사람이 올리는 매출이 몇십 명이 올리는 매출을 능가하니까. 한 사람을 위해 모델을 5, 6명 섭외하고, 음향장비도 준비하고, 호텔 케이터링도 부르고. 친구 몇 명과 함께 쇼를 본 뒤 그 사람이 산 물건은 자그마치 5000만원어치더군.”

“한 가족을 관리하기도 하지. 딸의 생일 때,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쇼를 여는 거야. 그 집에 찾아가서 방 하나는 액세서리 전시룸으로 꾸미고, 다른 방에서는 쇼를 열고. 행사비용은 한 800만원? 순이익도 800만원이 넘으니까 그 가족이 한 번 행사에서 사는 명품은 수천만원어치지.”

“태평양의 설화수는 한방 명품 화장품이잖아. 나온 지 7년 만인 올해 리뉴얼된다지? 마니아 클럽을 조직해 운영하지. 각계 인사를 초청해서 수시로 행사를 열고 설화수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만들지. 미술작가가 회원이라면 태평양에서는 전시회 지원도 하더군. ‘대장금’으로 유명한 궁중음식전문가 한복려씨도 설화수 회원이야.”

명품쇼 기획자인 강지원, 안현서, 김소연씨(왼쪽부터)

▽모델=“모델다운 모델은 어떤 옷을 줘도 소화하지. 아유, 그런 애들 보면 이뻐 죽겠어. 해외진출도 밀어주고 싶고.”

“사람만 튀지 않고 옷과 사람이 조화되는 거. 톱 모델의 요건이지. 쉽지는 않지만.”

“요즘은 연예인들처럼 모델도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옷에 대한 예의’가 없어.”

“제대로 된 모델들은 쇼 전에는 항상 서 있잖아. 옷이 구겨지면 어떡해.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서 있고. 먹지도 않고. ‘도리’를 안다고 할까.”

“인간적 소양을 갖추기 전에 스스로 뭔가 된 줄 아는 애들 있잖아. 보통은 생명력이 짧지 않아?”

“어떤 애들은 안 그래. 무대에 서면 딴사람이 되는데 어떡하겠어.”

“참 이상한 게 인간성은 엉망인데 ‘타고난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있어. 성실하고 기본이 돼 있어서 밀어주고 싶지만 안 되는 아이도 있고.”

“그래도 결국 끝에 남는 건 노력하고 인성이 좋은 아이들이더라.”

▽무대 뒤에서=“길가다가 실밥이나 머리카락 붙어있는 사람을 보면 손이 먼저 나가서 그걸 떼. 무대 서기 전에 모델들 정돈해 주잖아. 직업병인가봐.”

“무대 뒤는 전선이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으면 죽음이잖아. 모델이 급하게 나가다 넘어지면 옷 찢어져, 몸 다쳐, 행사 차질 생기지. 자꾸 정돈하는 버릇이 생겨 그런지 집안에서도 TV 전선, 전화줄 다 치워.” “행사 전에 나는 밥을 못 먹어. 배고픈 것도 못 느끼지. 스태프들은 처음에는 같이 안 먹다가 이제는 적당히 알아서 먹더라고.” “향수 같은 뷰티 행사는 특히 냄새나면 끝장이지. 행사 음식들 봐. 젖은 음식이나 냄새나는 음식은 없잖아.”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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