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만기연장, 구체적 방안 없이 부랴부랴 발표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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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안에 주택담보대출의 절반가량을 만기 3년 이하의 단기에서 10년 이상의 장기로 바꾼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대체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총선을 불과 3주일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구체적인 시행 방안도 없이 70조원의 주택담보대출을 장기로 전환해 서민생활을 안정시킨다는 발표는 ‘선거용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255조1000억원.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154조8000억원으로 60.7%에 이른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만 해도 42조1000억원으로 작년의 28조1000억원에 비해 50% 정도 많다.

더구나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만기가 3년짜리여서 앞으로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를 3년에서 10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들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택대출 등 가계부채가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의 원활한 만기 연장 여부를 예의주시해 왔다.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5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3년 전부터 크게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만기가 돌아온다”며 “주택담보대출로 금융시장이 또다시 불안해지는 일이 없도록 은행들이 만기 연장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은행들도 주택담보대출을 장기로 전환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으로서는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 있고 고객들은 대출금을 오랜 기간 나눠 낼 수 있으므로 상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주로 3년 이내의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는 상황에서 10년 이상의 장기로 자금을 운용하게 되면 리스크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은행들은 재무건전성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게다가 대출을 장기로 전환했다가 시장금리가 오르기라도 하면 고객은 높아진 원리금 상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70조원의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장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제시하지도 않은 것은 어쩐지 어설프게 보인다”며 “선거용 정책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를 늘리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필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진작부터 대책을 강구해오던 사안으로 총선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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