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4]백화점 개장전부터 줄서기… “일단 사고봐요”

  • 입력 2004년 3월 22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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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으면 돈 버는 것” 21일 오전 ‘2만원 구두특가전’이 열린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고객들이 뛰어들어 진열대에 있는 구두를 잡히는 대로 집어 들고 있다. 요즘 백화점들에는 이처럼 갖가지 ‘폭탄 세일’이 잇따르고 있다. 정재윤기자
“잡으면 돈 버는 것” 21일 오전 ‘2만원 구두특가전’이 열린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고객들이 뛰어들어 진열대에 있는 구두를 잡히는 대로 집어 들고 있다. 요즘 백화점들에는 이처럼 갖가지 ‘폭탄 세일’이 잇따르고 있다. 정재윤기자
21일 오전 10시20분 서울 성북구 길음동 현대백화점 미아점 앞.

주부 100여명이 정문 앞 광장을 빼곡히 메운 채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뒤 문이 열리자 주부들은 100m 달리기를 하듯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지하 1층 여성 구두 진열대 앞. ‘리사’의 구두 50여켤레가 동이 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50여초였다. 이 구두들은 20만원 안팎에 팔렸다가 반품된 제품으로 행사 기간에는 2만원에 나왔다.

주부 박희순씨(58·서울 노원구 월계2동)는 “지난주 화요일 행사가 시작될 때부터 매일 아침 와서 오늘 열 켤레째 샀다”며 “그래봤자 20만원이니 구두 한 켤레 값”이라고 말했다.

요즘 백화점들에는 이처럼 갖가지 ‘폭탄세일’이 잇따르고 있다. 1년에 200일 남짓 세일을 해도 유통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바깥에 매장을 여는 ‘공간 이동형’도 있고 고급 백화점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중고품이나 반품, 전시 상품을 싸게 내놓거나 고가 상품을 경매로 파는 ‘이미지 파괴형’도 많다.

▽싸면 무조건 산다?=폭탄세일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의 대부분은 ‘품질’과 ‘가격’에 만족했다. 그러나 ‘싼값’에 혹해 당장 필요 없는 상품을 여러 개 사는 등 ‘비합리적’ 소비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에서 19일 오후 1시부터 진행된 ‘100원 경매전’에서 563만원짜리 대우 일렉트로닉스 42인치 PDP TV가 470만원에 낙찰된 게 대표적인 예. 이 경매에 참가했던 윤태진씨(45·자영업)는 “380만원까지 부르다가 중간에 포기했는데 전자랜드에서 비슷한 제품을 385만원에 파는 것을 보고 왔기 때문”이라며 “시장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고 온 사람들 때문에 값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매로 나온 필립스의 29인치 완전평면TV, 바흐네트의 6.2kg짜리 냉장고 등은 모두 백화점 판매가의 70∼80% 선에서 낙찰됐다. 백화점에서는 당초 50%면 적정 가격대라고 봤다.

19∼21일 오전 8시반부터 10시10분까지 애경백화점 구로점 동문 밖에서 열린 ‘알뜰 장터’ 이용객 가운데 40% 정도는 행사장에서 7000원짜리 청바지 등을 산 뒤 백화점 영업이 시작되자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자영업자 윤영서씨(47·서울 양천구 목동)는 “출근을 미루고 아내와 함께 와서 아이들 옷과 내 셔츠를 샀다”고 말했다.

애경측은 오전 매출이 지난해 같은 주말에 비해 50% 늘었다고 밝혔다.

▽백화점들의 고민=폭탄세일은 백화점으로서는 사실 큰 부담이 없는 행사다. 세일에 참가하는 업체들이 마진 손실의 상당 부분을 감수하기 때문.

반면 백화점에는 매출증대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애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백화점들은 추가 폭탄세일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마진 손실이 적다고 해서 백화점들이 무한정 폭탄세일을 할 수는 없다. ‘싸구려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기 때문.

한 백화점 바이어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벤트를 했는데 고급 이미지에 타격이 갈까봐 추후 행사기획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백화점은 연간 폭탄세일 행사 횟수를 제한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 김진혁 연구원은 “요즘은 ‘세일 기간이 아닌데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면 바보’라고들 한다”며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백화점들이 고가 전략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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