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시대]<4>경영권 안정-적대적 M&A조화 관건

  • 입력 2004년 2월 2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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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과 SK측의 경영권 대결을 계기로 한국의 경영권 보호 장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SK를 비롯한 재계는 외환위기 이후 영미식 주주가치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경영권 보호 장치가 빠른 속도로 없어진 데다 출자총액제한 등 재벌에 대한 규제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경영권 보호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의 증권거래법이나 국민감정이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힘들다고 주장한다.

정부 내에서도 ‘적대적 M&A를 통한 시장규율’과 ‘경영권 안정’이란 상충된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아직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상태다.

외국의 경영권 보호 관련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때 적대적 M&A의 천국으로 불렸던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각 주가 경영권 방어에 무게를 두는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 안정을 중시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최근 적대적 M&A가 이루어졌다.

서강대 박영석 교수는 “경영권 안정과 적대적 M&A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야 한다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며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와 기업의 진화과정 등을 감안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창에서 방패로=1960년대 미국에서 기업 M&A 바람이 불자 기업들은 너도나도 덩치를 키우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복합기업(Conglomerate).

하지만 복합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자 ‘복합기업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들 기업의 실적이나 주가가 낮다는 의미였다.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반독점법에 대한 해석을 완화해 M&A를 활성화시켰고 미 대법원은 각 주 법원의 경영권 보호 판결을 뒤집었다.

그 후 마이클 밀켄으로 대표되는 기업사냥꾼들에 의해 적대적 M&A 붐이 일자 투자은행과 법률가도 자신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적대적 M&A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60년대 M&A와 달리 80년대 M&A는 ‘이혼 M&A’로 불린다. 디스카운트된 복합기업을 인수한 후 회사를 쪼개 팔거나 회사 자산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사냥꾼의 탈법행각이 밝혀지고 적대적 M&A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되자 기업들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1983년 유명한 기업사냥꾼인 피컨스가 석유메이저 걸프 오일에 대한 M&A를 선언했을 때 걸프 오일은 본사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경영권 방어를 대폭 허용하고 있는 델라웨어주로 옮겼다. 현재 미국 대기업의 과반수는 본사를 델라웨어주에 두고 있다.

델라웨어주를 비롯한 미국 각 주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황금낙하산(적대적 M&A로 이사가 사임할 경우 고액의 퇴직금을 받도록 해 기업인수 비용을 높이는 것), 독약(적대적 M&A 방어를 위해 우량자산을 매각하거나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행위)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적대적 M&A보다는 쌍방이 합의하는 우호적 M&A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유럽은 방패에서 창으로=독일에서는 2000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이 독일 통신업체인 만네스만을 적대적으로 M&A했다.

독일은 오너 가족과 은행 등 전략적 투자자들이 대기업 지분의 과반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적대적 M&A가 쉽지 않다. 또 회계 관행이 불투명하여 외부에서 기업 사정을 알기 어렵고 독일 투자자들도 적대적 M&A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본다.

만네스만 사례는 이 같은 독일의 M&A 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외국기업에 적대적인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캐나다 알루미늄회사인 알칸이 같은 업종의 프랑스기업인 배쉬네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합병기업의 본부를 독일과 프랑스에 두는 조건 등을 붙여 두 외국기업의 자국기업 인수를 허용했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외국인의 자국기업 주식 보유를 허용하면서도 경영권 보호장치를 두고 있다.

스웨덴은 오너 가족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10배 이상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차등의결권 주식제와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갖고 있다.

스위스는 등기부 주식발행과 소유권 이전 규제, 오스트리아는 주요 산업 및 금융기관의 국유화 등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있다.

▽창과 방패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한국=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을 받아들였다. 10% 이상 지분 제한 등 경영권 보호 장치는 폐지된 반면 M&A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제도가 도입됐다.

특히 시가총액 기준 외국인 비중이 40%를 넘어서고 특히 주요기업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60%에 육박하면서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미국 뉴욕 주식시장의 외국인 지분은 10%, 가장 개방적이라는 영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지분도 32% 수준이다.

이번 소버린과 SK측의 경영권 대결을 계기로 재계는 외국인의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소버린 핵심관계자는 “현행 제도는 1대주주가 회사 재원을 동원해 주총 대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김준기 교수는 “M&A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M&A 위협을 통해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끝>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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