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세번째 무산]하루종일 우왕좌왕… 國益 내팽개쳐

  • 입력 2004년 2월 9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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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촌지역 출신 의원들이 FTA 비준안 표결 처리 방식을 놓고 ‘기명투표는 전자투표’라며 의사국장(가운데)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9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촌지역 출신 의원들이 FTA 비준안 표결 처리 방식을 놓고 ‘기명투표는 전자투표’라며 의사국장(가운데)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9일 국회는 한마디로 ‘진공상태’ 그 자체였다. 마치 총선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각 당이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한국주식회사’의 혼란상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16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라는 점도 각 당의 원심력과 당 지도부의 ‘레임덕’을 한층 키웠다. 정부조차 정치권을 설득하지 못한 채 무기력함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정당 대 정당간에는 물론 각 당 내부에서조차 지도부 대 지도부, 지도부 대 평의원간에 중층적 대결구도가 펼쳐져 혼선을 가중시켰다.》

▽‘3당 3색’=각 당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에 대해 어지러울 정도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먼저 FTA에 대해서는 ‘무기명 자유투표’(한나라당) ‘기명 자유투표’(민주당) ‘찬성 당론’(열린우리당), 파병안에 대해서는 ‘찬성’(한나라당), ‘권고적 반대 당론’(민주당), ‘당론 미결정’(열린우리당) 등으로 뿔뿔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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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정당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기색도 역력했다. 정서적으로 파병안에 찬성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파병안 처리에 적극적이지 않은데 왜 우리가 앞장서느냐”며 열린우리당 쪽에 화살을 돌렸다. 열린우리당은 FTA 처리와 관련해 농촌 출신 의원들이 많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소속의원 설득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도부와 지도부간 갈등=민주당 조순형(趙舜衡)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모두 발언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46조2항을 인용해 “당리당략이나 일시적 국민여론보다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평소 FTA 비준 동의안과 파병 동의안에 찬성 입장을 보여 온 조 대표는 당내의 집단적 반대 움직임을 의식한 듯 “의원 개개인이 소신과 견해를 기탄없이 밝히되, 그것을 타 의원에게 강요하는 결과가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공개로 진행된 현안 토론에선 추미애(秋美愛) 김영환(金榮煥) 상임중앙위원 등 개혁파 지도부가 앞장서서 “FTA 동의안은 반드시 기명 투표로 처리해야 하며 파병 동의안은 적어도 권고적 반대 당론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바람에 민주당은 표결 끝에 ‘반대’를 권고적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치적 여당’ 임을 강조해온 열린우리당은 파병 동의안에 대해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찬성 입장을,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와 장영달(張永達) 국방위원장이 ‘당론 또는 파병안 변경’ 입장을 고수해 당론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정치적 여당으로서 동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소신을 접었지만 이날 본회의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의원들의 반란=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이규택(李揆澤), 민주당 이정일(李正一) 의원 등 농촌 지역 출신 의원들은 당지도부의 FTA 처리방침에 반발을 계속했다. 농촌 출신 의원 20여명은 본회의에 앞서 모임을 갖고 FTA를 무기명투표로 처리할 경우 이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되, 기명투표를 실시할 경우에는 참여키로 했다. 이규택 의원은 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기명투표 방식으로 할 경우 의원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아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서도 김성호(金成鎬) 의원 등의 반대로 결국 파병동의안 처리 당론을 결정하지 못했다.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간 충돌=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에서는 정부 파병안에 반대해온 장 위원장과 국방위 소속 상임위원간에 고성이 오가는 충돌이 빚어졌다.

발단은 장 위원장이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전체회의에 나타나지 않고 오후로 회의를 미룬 데서 비롯했다. 장 위원장은 오후 2시 회의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자택으로 찾아와 이들을 설득하느라 출근하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으나, 야당 의원들은 “반(半) 고의적으로 회의장에 나오지 않은 것 아니냐”고 따졌다.

특히 한나라당 유한열(柳漢烈) 의원은 장 위원장을 ‘당신’이라 부르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생각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차리리 위원장직을 사퇴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장 위원장도 “왜 말을 함부로 하느냐”며 위원장석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무기력한 정부=노 대통령이 지난달 8일 국회를 방문해 각 당 대표들에게 FTA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고, 농민단체들을 설득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허상만(許祥萬) 농림부장관도 7일 민주당사를 방문해 “FTA 관련 지원기금 출연액을 3400억원으로 증액하고 부채경감 방안도 추가하겠다”고 호소했지만 농촌 출신 의원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라크 파병 동의안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9일 국방위에서 파병 동의안이 통과되기 직전까지도 “명실상부한 평화재건부대를 파병해야 한다”는 장 위원장조차 설득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파병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정치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조차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자조적 반응이 적지 않았다. 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이 총선에 ‘올인’하듯 정치권의 설득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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