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공직자비리 합동감찰반 야전사령탑 구본영씨

  • 입력 2003년 12월 7일 18시 16분


코멘트
사무실에서 ‘암행 감찰’ 관련 자료를 검토중인 구본영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 그는 공직자 감찰 업무의 특성상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유로 정면으로 사진 찍기를 사양했다. -원대연기자
사무실에서 ‘암행 감찰’ 관련 자료를 검토중인 구본영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 그는 공직자 감찰 업무의 특성상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유로 정면으로 사진 찍기를 사양했다. -원대연기자
“고역이죠. 뇌물을 챙기는 공직자는 벌 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같은 공무원이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공직자 비위 적발을 위한 정부 차원의 합동감찰을 주도하고 있는 구본영(具本榮·51)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은 암행감찰의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정부는 10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이 나온 뒤 공직기강의 해이를 우려해 합동감찰반을 구성해 강도 높은 사정을 벌이고 있다. 구 심의관은 중앙부처 17개 기관에서 파견된 50명으로 구성된 이 합동감찰반의 야전사령관. 그러니까 ‘암행어사 대장’인 셈.

“계획 없이 무작정 돌아다니거나 잠복하는 게 아닙니다. 제보가 들어오기도 하고, 지역여론도 듣고, 나름의 정보원도 있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수뢰 현장을 포착하겠습니까.”

그에 따르면 각종 정보망을 통해 비위 공무원에 대한 정보가 입수되면 정황상 의혹이 짙은 인물들에 대한 1차 확인작업을 거친 뒤 리스트를 만들고 본격적인 ‘수뢰 공무원 사냥’에 돌입한다.

지난달 전북도청 구내식당 커피자판기 앞에서 현금 47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가 잡힌 공무원이나, 경기 남양주시청 야외주차장에서 수백만원이 담긴 보석함을 넘겨받다 현장에서 외통수로 걸린 공무원 등이 모두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일단 ‘타깃’이 설정되면 그의 근무지로 한 팀의 감찰반이 비밀리에 출장을 간다. 광범위하게 현지 탐문조사를 하고 직장 안팎에서 민원인 행세를 해 가며 그를 관찰 추적한다. 정보에 신빙성이 있으면 한 달 넘게 따라붙기도 한다.

감찰반은 6개 팀으로 이뤄져 있다. 각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서로 전혀 모른다. 업무 자체가 철저히 비밀이기 때문.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지방으로 출장 간 것이고, 계속 사무실에 나타나면 서류를 갖고 기획사정을 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수뢰 현장이 들통 난 공무원을 경찰에 넘긴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구 심의관은 “수뢰 공무원은 갈수록 줄고 있지만 액수는 반대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위험수당’이 적용됐기 때문인 것 같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적발돼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직장에서 파면될 경우 뇌물액만큼의 퇴직금을 못 받게 돼 있어 전반적으로는 공무원 사회의 ‘물’은 맑아지고 있다는 것.

구 심의관은 “특히 요즘 젊은 공무원들은 정말로 깨끗한 것 같다”며 “일부 부패 공무원 때문에 공무원사회 전체가 매도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팀원들이 정말 고생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출장 가서 끝없이 기다릴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일주일씩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거든요. 가정에서 ‘나쁜 아빠’로 찍히는 건 아닌지, 제일 큰 걱정이죠.”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