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명예퇴직후 '제2의 인생' 사는 사람들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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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가 단일기업의 1회 감원 규모로는 국내 사상 최대인 5500여명에 대해 명예 및 희망퇴직을 실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퇴직인원을 연령별로 보면 46∼50세가 33.6%, 41∼45세가 29.4%로 40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같은 연령분포는 한국 사회에서 40대 명퇴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당시 이들에겐 기본급 50∼60개월 수준의 위로금이 지급됐다. 퇴직금(중간정산분 제외)과 명퇴 위로금을 합하면 1인당 평균 1억5000만원선. 이들은 KT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자들이다. 이들 중 곧바로 창업전선에 뛰어든 명예퇴직자 두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40대 명예퇴직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살아가는지 알아본다.》

▼통신부품회사 차린 조남준씨, 각종장치 특허 출원 ▼

“회사를 떠난 뒤 며칠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조남준씨는 KT에서 명예퇴직한 뒤 강원대 정보통신연구소에 ‘GP-LA’라는 통신관련 제품 개발회사를 차렸다. 컴퓨터 화면에 나온 사진은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케이블 조립식 접속관이다. 사진제공 GP-LA

퇴직 후 학교 후배와 함께 통신 부품 개발회사를 차린 조남준씨(46)는 창업하는 과정에서 불안감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85년 KT 입사 후 인터넷 관리, 전송시설 운용, 광 전송장치 관리 등 기술 분야에서 근무해 온 그는 9월 26일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 등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평생직장은 보장되기 어렵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어요. 또 평소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측이 다음날 “회사에 계속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을 때 그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는 “사실 그 말을 듣더니 집사람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불안했던가 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명예퇴직을 했다. 조씨는 강원대 정보통신연구소에 7평 크기의 사무실을 얻어 후배와 함께 ‘GP-LA’라는 회사를 열었다. 대학측에서 사무실을 무료로 임대해 줘 창업자금은 사무실 집기 구입 비용 외에는 거의 들지 않았다.

두 명이 전부인 조씨 회사의 사업아이템은 부가가치가 높은 통신 관련 제품 개발. 퇴직에 앞서 이미 개발에 성공한 초고속인터넷용 낙뢰보호기와 케이블 조립식접속관이 대표적인 제품.

낙뢰보호기는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 낙뢰 사고로 초고속망이 자주 피해를 보는 것을 안 뒤 직접 개발했다. 조립식접속관도 보수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기존 케이블 연결 부분의 문제점을 개선한 제품으로 이미 특허출원을 한 상태. 한 통신회사의 지원을 받아 시제품도 개발해 놓았다.

이처럼 조씨의 창업은 비교적 ‘준비된 창업’이었다. 항상 뭔가를 만들기 좋아하는 평소의 습관 때문에 회사에서는 ‘조 박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KT라는 큰 울타리를 떠난 지 벌써 한 달. 조씨는 “창업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은 상품이라도 실제로 매출이 발생해서 돈을 벌어 줄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어떤 때는 잘될 것 같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내가 자기도취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면서 불안해지고 그래요.” 조씨의 고백이다. 조씨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비전’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앞으로 잘해야지요. 저희 회사는 물건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합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해산물 점포연 박창근씨, 하루4시간 자며 꿈키워 ▼

박창근씨는 KT를 명예퇴직한 뒤 주5일제 근무 실시에 따라 늘어날 관광객들을 겨냥해 자신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해산물 판매업으로 창업했다. 안면도=박영대기자

박창근씨(49)는 하루 동안 피우는 담배가 한 갑에서 최근 두 갑으로 늘었다. 평소 낙천적인 성격의 그이지만 얼마 전 창업하면서 스트레스가 부쩍 늘었기 때문.

1980년 KT에 입사한 박씨는 주로 충남지역에 근무하면서 현장 선로 보수 업무를 해왔다.

“마지막 근무지였던 KT 홍성지사 청양지점에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번 명예퇴직 조건이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수산물 소매업을 시작했지요.”

창업 장소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를 택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는 점과 자신의 고향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또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 앞으로 관광객들이 서울에서 가까운 안면도를 많이 찾을 것으로 판단했다.

직장에 있을 때 주말마다 포구를 찾을 정도로 해산물을 좋아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둔다면 해산물 판매 쪽으로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해왔다.

지난달 1일 명예퇴직 후 그는 점포를 물색하다가 권리금을 합해 2800만원에 나온 매물을 구입했다. 안면도 백사장 포구 안에 있는 종근수산이라는 점포였다. 창업비용은 점포구입 비용 2800만원에 초기 물건구입비 등을 합쳐 4000만원. 창업비용치고는 상대적으로 투자비가 적게 들어갔다.

취급하는 해산물은 꽃게 대하 조개 생선 등으로 근처 어항에서 일찍 사온 뒤 주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다.

지난달 17일 영업을 시작한 그는 아직까지는 초보 장사꾼이다. “물건을 잘못 구입해 고기들이 죽는 바람에 하루에 수십만원을 손해 보기도 했어요. 아직도 흥정에 서툴러 물건을 손해보고 파는 일도 많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11시, 주말은 오전 6시∼다음날 오전 2시까지. 근무강도가 KT 근무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함께 일하고 있는 부인은 불과 2주 만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지기도 했다. 손님이 많은 주말은 늦게까지 일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가 아예 가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부부가 아직까지 하루도 쉰 날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수입은 직장 다닐 때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

“즐겁냐고요? 물론입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너무 행복합니다.특히 손님들이 서비스가 좋다며 다시 가게를 찾아올 때가 제일 좋습니다. 앞으로 일에 익숙해지고 손님도 많이 늘어 가게를 더 넓혀가는 것이 꿈입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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