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국산 디지털TV 美서 명품 대접

  • 입력 2003년 9월 28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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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유학생 최모씨(36)는 최근 대형유통점에 나갔다가 가슴 뿌듯한 경험을 했다. 프로젝션TV 코너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제품이 소니나 마쓰시타 등 일본업체 것이 아니라 한국산 제품이었던 것. 최씨는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대형 디지털TV는 한국제품이 최고”라는 매장 직원의 설명에 한국산 가전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산 가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디지털TV를 비롯해 생활가전, 디지털영상기기 등의 분야에서 한국 가전 업체들은 일본 업체들을 추월했거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고급 이미지 심는다=‘한국산 가전은 싸구려’라는 인식은 해외시장에서는 옛말이다. 베스트바이나 시어스 등 미국 내 대형 유통점에서 최고급품을 위한 진열대 맨 앞쪽은 한국산 가전이 차지한다.

삼성전자의 디지털 광(光)프로세싱(DLP) 프로젝션TV는 세계 최대의 대형 TV 시장인 북미지역에서 올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통한다. 51인치 기준 제품 한 대 가격이 4000달러나 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 기존 제품에 비해 크기는 작고 화질이 우수해 대형 디지털TV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세계 주요 공항, 호텔, 백화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산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도 가전명품의 대명사로 통한다. LG전자는 올해에만 해외 호텔, 백화점, 공항, 쇼핑몰 등에 5000여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PDP의 본고장인 일본 시장마저 넘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랍에미리트 왕실이 LG전자 PDP TV 35대를 구입하면서 한국산 PDP가 중동 왕실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가전 기술=LG전자는 최근 모터의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꿔 전력소모량과 소음을 30% 정도 줄인 디오스 냉장고를 발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박영일 LG전자 냉장고 사업부장(상무)은 “경쟁업체들이 이 모델을 개발하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시판한 일체형 반사스피커 시스템은 2대의 전면 스피커만으로 스피커 4대를 설치한 효과를 내도록 한 혁신적인 기능으로 해외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업체들의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본 업체들이 한국 업체의 기술이나 제품을 쫓아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DVD와 VCR의 기능을 통합한 DVD 콤보플레이어는 2000년 삼성전자가 가장 먼저 상품화한 것을 일본 업체들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휴대형 MP3 플레이어도 한국 업체들이 고안해 세계 시장에 뿌리를 내린 상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액정표시장치(LCD), PDP, 반도체, 배터리 등 디지털 가전 분야 핵심소재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것도 한국 가전산업의 강점으로 분석됐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북미지역에 수출되는 LG전자의 드럼세탁기 트롬은 기능조작 버튼이 제품 앞쪽이 아닌 위쪽에 달려 있다.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현지 소비자의 성향을 감안해 디자인을 바꾼 것.

LG전자는 대형 제품을 선호하는 미국 시장에는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된 드럼세탁기를, 거실에 세탁기를 두는 유럽에는 중형 크기의 저소음 제품을 각각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랍지역을 겨냥해 이슬람 성지인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휴대전화기도 선보였다.

국내 업체들은 이처럼 디자인과 기능을 지역별로 특화하는 현지화 전략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그러나 소니, 마쓰시타 등 일본 업체들에 뒤지는 브랜드 인지도 개선은 한국 업체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된다.

삼성전자 김영윤 상무는 “브랜드 경쟁력이 뒤져 아직도 한국산 제품이 일본 제품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브랜드 경쟁력 차이에 따른 소니 제품과의 가격격차를 내년까지 완전히 없애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정우 연구원은 “디지털 전환기에 한국산 가전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디지털카메라나 게임기 등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한국산 가전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기술개발 및 혁신제품 개발 노력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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