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통상파고…'수출 한국' 먹구름

  • 입력 2003년 6월 1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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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한국을 향해 몰려오는 통상(通商)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미국 상무부가 17일(현지시간)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44.71%의 고율(高率) 상계관세를 물리기로 최종판정을 내린 것은 ‘보조금 지급 문제’가 무역 분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이번 최종판정은 8월로 예정된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상계관세 최종판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 반도체뿐만 아니라 조선 제지 등 다른 분야에 대한 통상 압력의 파고(波高)도 높아지고 있어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하이닉스, ‘새로운 통상전쟁’ 신호탄=하이닉스에 대한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는 교역 상대국의 경제정책을 문제삼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통상 압력에서 한걸음 나아간 것이다.

미 상무부는 2001년 하이닉스 등에 대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정부의 보조금으로 규정했다.

한국측은 그동안 이 제도 도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보조금이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44%가 넘는 관세부과를 결정한 것은 우리 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이번 판정이 올해 4월 예비판정에서 한국산 반도체에 33%의 잠정관세를 물린 EU의 최종판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지난해 EU에 대한 한국의 D램 수출액은 12억7000만달러, 하이닉스의 수출은 2억7000만달러였다.

한편 한국 정부는 하이닉스에 대한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와 관련해 이르면 이달 중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수입규제 급증과 개도국의 압박 가세=지난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각국의 수입규제 건수는 27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소(被訴) 건수다. 올 들어서도 이미 8건이 접수됐다. 규제 품목도 반도체는 물론 철강 조선 섬유 통신서비스 등 전 산업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또 EU는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를 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한국 제지업계에 대한 덤핑 제소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수출 타격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미국 EU 등 주요 수출대상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도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대한 개도국의 통상 관련 제소 건수는 총 19건으로 전체(27건)의 70.4%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한국의 두 번째 무역 상대국인 중국의 제소 건수는 9건으로 절반에 가깝다.

철강 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 품목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철강 제품은 7건, 석유화학 제품은 13건이 제소당했다.

▽치밀한 사전준비와 선제대응이 필요=한국 정부는 하이닉스 문제와 관련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미국 산업피해 유무에 대한 최종판정(7월 29일)을 내리기에 앞서 WTO 제소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WTO를 통한 조정은 사후처리에 그칠 뿐 아니라 타결 시점까지 해당 기업이 보는 피해를 막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WTO의 분쟁 해결절차는 12∼15개월이 걸린다. 또 설사 승소하더라도 하이닉스의 대미(對美) 수출 회복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무한(金武漢) 무역연구소 국제통상팀장은 “사후대응에 앞서 수입규제 움직임을 미리 알 수 있는 사전경보시스템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통상마찰은 보통 2∼3년 전부터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수입 규제와 관련한 입법 동향 등을 살펴 선제대응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산업계의 협력과 조율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낙균(崔洛均) 무역투자정책실장은 “특정 국가에 밀어내기식 수출을 하거나 한국 제품 점유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정부가 이를 파악해 물량을 조절하는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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