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수사종결 배경]경제파장 고려 수사 범위-수위 조절

  • 입력 2003년 3월 11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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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SK그룹 일부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 및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면서 SK그룹 전체로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달 17일 SK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와 계열사 3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최태원(崔泰源) 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확대하기 위해 작성된 ‘내부 보고문건’과 SK글로벌의 분식회계를 계획한 내부문서 등 핵심적인 물증들을 다수 확보했다.

이 같은 성과는 검찰이 지난해 12월 중순경부터 두 달간에 걸쳐 은밀히 내사를 진행하고 압수수색을 준비하는 기간만도 일주일이 걸리는 등 치밀하게 수사를 진행한 결과였다.

그러나 검찰은 최 회장 소유의 워커힐호텔 주식과 SK C&C 소유의 SK㈜ 주식 맞교환 등 이미 알려진 혐의 이외의 다른 부분으로는 수사 범위를 넓히지 않는 등 조심스러운 수사 행보를 계속했다.

검찰은 또 1조6000억원대 규모의 분식회계가 적발된 SK글로벌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도 2001회계연도분에 한정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다른 계열사로는 분식회계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최 회장과 SK그룹의 치부(恥部)를 한꺼번에 드러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을 감지했지만 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수사 범위와 수위를 면밀히 조절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번 수사를 지휘한 박영수(朴英洙) 서울지검 2차장이 이날 “이라크전쟁 사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경제상황에 SK그룹 수사가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고 말한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또 SK그룹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돌고 있는 재벌의 정치자금 제공설 등과 맞물려 ‘정재계 전반에 걸친 본격 사정(司正)’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이를 사전에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이 같은 신중한 행보는 삼성, 두산, 한화그룹 등 다른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에서도 당분간 비슷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책임자인 이인규(李仁圭) 형사9부장은 “재벌그룹에 대한 기획 차원의 수사가 아니다. 다른 그룹 사건도 통상적인 고발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련 수사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관련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고 당분간 (수사를) 확대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시민단체 등의 추가 고발 및 언론 보도 등 상황을 변화시킬 변수는 얼마든지 있어 검찰의 수사 확대 가능성을 전면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게 검찰 주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기다려라,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관측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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