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경영]<17>'고객안전' 못지키면 '기업미래' 없다

  • 입력 2003년 3월 10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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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11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플로리다로 향하던 ‘밸류제트’사의 항공기가 화물칸에 불이 나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즈 지역에 추락, 105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으로 삼은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전형적인 참사’로 기록됐다. 사고기의 산소통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안전뚜껑이 장착돼 있지 않았던 것.

밸류제트사의 정비대행업체인 새브리테크사의 경영진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뚜껑을 씌우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99년 새브리테크의 정비담당 부사장과 정비사 2명에게 살인죄를 적용, 징역 55년과 벌금 270만달러(약 33억원)가 구형됐다. 새브리테크는 그후 없어졌다. 산소통 안전 캡은 한 개에 3센트였으며 사고기에 실렸어야 할 안전뚜껑은 모두 9달러어치였다.

성수대교 붕괴(94년) 아현동 도시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95년) 대구지하철 도시 가스 폭발(〃)에 이어 이번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까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은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한국에서 ‘안전’은 이제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

한 중견 건설업체의 간부는 “안전에 소홀했다가 자칫 업계에서 ‘왕따’ 당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각종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았으며 마침내 회사 매출이 급감했다는 것. “과거에는 인부 몇 명 다쳐도 싸게 공사를 수주하기만 하면 남는 장사였는데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쌍용건설이 건설 중인 용인 수지 2차 쌍용 스윗닷콤 현장에서는 아파트 1층부에 50여마리의 오리를 키우고 있다. ‘아래에 귀여운 오리가 있으니 뭘 떨어뜨리는 등 안전사고를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 회사측 설명.

최근 건설현장 안전시설 미비로 노동부로부터 작업중지명령을 받은 S사 등은 “‘안전’과 회사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것조차 바람직하지 않다”며 취재를 사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처벌지양보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본인만 알고 있는 업무상 승객의 안전 저해 요인을 보고하면 해당 업무 관련자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고 조용히 불안요인을 제거한다. 캐세이퍼시픽 싱가포르에어라인 등 안전하다고 소문난 항공사와 비슷한 수준인 0.07%대의 기체보험료율을 인정받은 것도 이 같은 노력 때문.

제품 사용에 따른 소비자들의 안전 책임을 업체가 지는 제조물책임법(PL법)은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 법무법인 태평양의 PL팀 강종구 변호사는 “갈수록 제품들이 다기능화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제조자를 맹목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며 “직원과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앞으로 설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산업재해 재해자와 사망자 수 (단위:명)
연도근로자수업무상사고 재해자수업무상사고 사망자수경제손실액(원)
82347만13781612304850억
85450만14180917189300억
88574만14232918231조4850억
91792만12816921163조5080억
94727만8594824804조9930억
97824만6677020477조7800억
00949만6897614147조2810억
자료:한국산업안전공단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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