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SK최태원회장 변칙증여수사]그룹지배권 편법확보'조준'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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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에게 맞춰져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제 대주주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대주주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비상장 주식을 이용한 부당 내부거래를 해 지배구조를 확고히 하는 회사에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최 회장이 계열사인 SK C&C에 비상장 주식인 워커힐호텔 주식을 넘기고 SK㈜ 주식을 싸게 넘겨받았다는 혐의 사실을 꼬집는 말이다.

검찰은 1월초부터 최 회장의 SK㈜ 주식 확보 과정을 집요하게 내사해 왔으며 최근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17일 최 회장 사무실과 SK그룹 구조조정본부, SK C&C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입수한 컴퓨터 파일 등에서 SK㈜ 주식 가치의 절반 가량인 워커힐호텔 주식이 1 대 1 비율로 맞교환됐다는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얻을 것은 다 얻었다. SK그룹측에서 삭제한 컴퓨터 파일도 복구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최 회장이 워커힐호텔 주식과 SK㈜ 주식의 가치를 알고 있으면서 SK C&C 등 계열사 관계자들에게 주식 교환을 지시했는지 여부.

검찰은 17일 SK그룹 구조조정본부 등 최 회장의 주식 관련 계좌를 관리한 회사 임원 및 실무자 등을 상대로 최 회장에게서 주식 교환 지시를 받았는지 집중 추궁한 끝에 최 회장의 지시를 인정하는 진술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최 회장이 SK증권과 JP모건 사이의 SK증권 주식 이면 거래에 개입한 정황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하기 전에 주식 이면 거래와 관련한 계약서를 입수해 조사했다”며 수사가 이미 많이 진척됐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재계 등에서는 최 회장의 형사처벌 가능성이 높으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최 회장이 구속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돌 정도다.

그러나 최 회장측에서는 SK C&C와 워커힐호텔 주식을 SK㈜ 주식과 교환하면서 주식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했으며 세율에 따라 세금도 냈다고 주장하고 있어 혐의 입증을 둘러싼 법리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관련 판례 등 필요한 자료가 많이 확보됐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검찰 수사는 최 회장 소환이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이며 빠른 속도로 진행돼 다음주말 이전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가 “이번 수사는 간단한 수사”라며 “수사가 ‘뚜벅뚜벅’ 앞으로 잘 나가고 있다”라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27일(다음 주 목요일)로 예정된 검찰 인사 대상자에 이번 사건 수사에 투입된 검사들이 포함된 점도 이럴 가능성을 높여 주는 대목.

따라서 검찰은 이번 주말을 전후해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출국금지된 회사 임원과 실무자 16명을 집중 조사한 뒤 다음주 초 최 회장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他그룹으로 수사 확대되나▼

“SK그룹에 대한 수사는 ‘재벌 사정(司正)’의 신호탄인가.”

물론 검찰은 이번 수사가 ‘재벌 길들이기’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삼성 LG 현대 등 다른 그룹들로도 수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재벌 2세의 편법 증여나 상속 문제에 관한 첩보와 수사 자료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나 서울지검 특수부와 형사9부 등에 축적돼 왔다.

재벌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처럼 ‘준비된’ 수사 과정이고 형사9부의 SK그룹 수사는 그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말이 검찰 안에서 나돌고 있을 정도다.

재벌 2세의 편법 증여나 상속은 SK그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도 최태원(崔泰源) SK 회장만 형사처벌될 경우 형평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결과와 축적된 자료에 다른 그룹들이 촉각을 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기관의 고발이나 검찰의 인지수사를 거쳐 본격적인 ‘재벌 사정’의 방아쇠가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5일 출범할 노무현(盧武鉉) 정부와의 교감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검찰수뇌부의 이견 △수사상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다른 그룹들에 대한 동시다발적 전면 수사는 당분간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수사가 노 당선자측과 교감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사실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 사실을 나중에 안 노 당선자측에서 ‘국가 신용등급 2단계 하락 전망이 나온 상태에서 SK에 대한 수사로 경제가 멍들 수 있다’며 우려했다”고 전했다.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 등 검찰수뇌부에도 경기 위축 등을 이유로 ‘재벌 사정’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또 20일 평검사, 3월 부부장검사 이상에 대한 인사가 각각 단행돼 형사9부를 중심으로 한 수사팀은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현재의 수사팀을 한시적 특별수사본부 등으로 개편하지 않는 한 다른 그룹들에 대한 전면 수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검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를 지금부터 동원해 수사를 확대할 경우 새 정부의 재벌 개혁에 검찰이 ‘총대를 멘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따라서 재벌 그룹들에 대한 전면 수사 여부에는 새 정부 출범 후 정권 차원의 결단과 검찰의 구체적인 비리혐의 포착 등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전례 드문 ‘電光石火’ 압수수색▼

‘전광석화(電光石火).’ 서울지검 형사9부가 17일 SK그룹 회장실 등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 일체를 확보하는 기민한 수사 활동에 대한 검찰안팎의 평가는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압수수색의 방법과 규모도 수사팀의 의지와 대담성을 잘 드러낸다는 것. 형사9부 검사 3명을 포함한 30여명의 수사팀이 일시에 재벌그룹 계열사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한 것은 검찰 역사상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특히 형사9부는 자체적으로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 방침을 먼저 결정하고 대검 중수부에는 이를 나중에 보고할 정도였다. 통상의 관례와는 판이한 수사 행보였던 셈이다.

통상 SK그룹과 같은 재벌그룹 정도라면 수사팀이 압수수색 방침을 결정하기 이전에 대검 중수부에 압수수색 방침을 보고한 뒤 지휘부의 지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은 수사팀이 ‘결단하듯’ 먼저 내부 방침을 정했던 것.

형사9부가 서울지검에 신설된 것은 2001년 6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여파로 인해 각종 금융사건이 폭증하자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금융 증권사범 전담수사부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동안 서울지검 특수부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형사9부는 지난해 8월 이인규(李仁圭) 부장 체제가 출범한 뒤 ‘명동사채업자 반재봉씨(59)와 은행간부 등 68명이 결탁한 1조원대의 자본금 허위납입사건’ 등 굵직굵직한 금융비리사건들을 잇달아 해결하면서 검찰 안의 ‘드림팀’으로 급부상했다.

형사9부는 또 인터넷 종합커뮤니티인 프리챌 대표이사 전제완씨(40)를 주식대금 가장납입 혐의 등으로 구속하는 등 유명 벤처기업 대표들을 줄줄이 구속하면서 ‘경제 특수부’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형사9부는 최근 검찰 수사착수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해 ‘수사유보’ 입장을 정리한 검찰 수뇌부에 ‘수사해야 한다’는 소신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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