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21>수출경쟁력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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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업국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기까지 한국은 20세기에 ‘전설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장기간 두자릿수 성장률을 보인 나라는 독일과 일본을 제외하면 유례가 없을 정도다. 이 성장의 원동력은 수출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수출’은 ‘과거지사’의 동의어처럼 돼버렸다. 수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정책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모두 낮아지고 있다. 최근 신용카드 소비가 급격히 느는 등 내수 시장이 커진 것이 한 원인이다. 튼튼한 내수 시장은 외부 경기변동의 충격을 완화해 주므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은 수출이다.

삼성 브랜드의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진 것이나, 포스코 제품의 품질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 현대자동차의 가격 경쟁력 등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반적인 수출경쟁력은 약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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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교역에서 한국은 언제까지나 개발도상국 지위에 안주할 수는 없다. 한국이 저임금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경쟁력 등에서는 아직 선진국에 밀리는 수준이다.

주요 선진국이 판을 벌이고 있는 고부가가치 수출 게임에 한국이 참여하려면 교역의 대상이 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개념에 대한 틀을 바꿔야 한다. 주된 수출 품목은 지식기반형 산업에서 나와야 한다.

IBM은 잘 알려져 있듯이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업이지만, 정작 이윤은 하드웨어 제조가 아니라 시스템 유지, 전산 컨설팅 등 자사 제품과 관련한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내고 그 서비스를 파는 데서 얻는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은 자동차를 단지 광화문에서 서초동까지 운반해주는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자동차는 편안함 안락함과 첨단 시설이 주는 편리함, 고급스러운 경험을 줘야 한다. 중저가 자동차 한 대를 파는 것보다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CD플레이어를 파는 것이 더 남는 장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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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상품과 서비스를 융합해 현재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다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단순한 하청의 역할이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는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서비스 산업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 서비스 산업은 200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0%, 고용의 69%, 전체 수출입의 23.4%를 차지하고 있다. 선진국이 될수록 고부가가치 분야 위주로 서비스 산업 비중과 교역규모가 커진다.

한국의 지난해 서비스 수지 적자는 7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말 마무리될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이후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적자는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은 장기적인 산업 정책과 연계돼야 한다. 교육 의료 법률 등의 영역을 산업 정책의 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식기반 경제에 걸맞지 않은 산업분류표와 국민계정은 수정돼야 한다.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제대로 측정, 분석되지 못한다면 정책을 수립하는데 오류가 생길 것이 자명하다. 현재 ‘중간 소비’로 처리되는 연구개발(R&D)은 국민계정상의 투자로 반영돼야 하고, 인적자본 투자의 비용과 효과를 측정할 계정의 개발도 필요하다.

산업자원부 내에 지식 기반 산업에 대한 전문가를 충원하는 등 정책 수립을 위한 정부 부처 자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KOTRA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의 마케팅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에는 대기업 외에도 틈새 경쟁력을 갖춘 많은 중소기업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국제적인 마케팅 여력이 없어 고전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KOTRA를 통해 무역 협상을 성사시켰을 때는 담당 KOTRA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비영어권 국가로의 수출 프로그램도 늘려야 한다. 더욱 공격적으로 무역 중개를 할 수 있으려면 KOTRA 내에 유창한 언어는 물론이고 현지의 경제 사정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양성돼야 한다.

베인앤컴퍼니 서울사무소 이성용 대표

▼무역수지 살펴보니▼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상품 무역 수지는 141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서비스 무역은 65억달러 적자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새 무역 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가 2004년말 마무리되면 서비스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며 “서비스 부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980년에서 2001년 사이 서비스 분야 수출과 수입은 금액 기준으로 각각 11.5배와 10.1배씩 늘었다. 문제는 서비스 수지 적자가 고착화돼 경상수지를 갉아먹는 것.

2000년에는 사업서비스, 특허권 등 기술 이용료, 유학 및 연수 등에서 큰 폭의 적자를 보였으며, 2001년에는 여행수지 적자가 서비스 수지 적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순수 여행 수지는 19억달러 적자, 유학 등 해외 연수를 포함한 여행 수지는 30억5000만달러 적자였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기술 도입액(수입액)과 기술 수출액의 차이인 기술 수지 적자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88년에는 기술 수출과 수입이 각각 890만달러와 6억7630만달러였으나, 99년에는 기술 수출 1억9330만달러, 수입은 26억8580만달러였다. 기술 수지 적자는 약 6억6740만달러에서 24억9250만달러로 늘었다.

서비스 무역의 약 30%는 미국과의 교역이 차지한다. 2000년 대미 서비스 무역 적자는 31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한국의 서비스 무역 경쟁력 지수는 2000년 기준으로 0.75에 그쳐, 미국(1.38) 영국(1.33) 프랑스(1.09) 보다 낮았다. 경쟁력 지수가 1보다 크면 경쟁 우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99년 기준으로 조사한 한국 서비스 산업의 부문별 지수는 ‘운수’만이 유일하게 1이 넘었으며 여행 0.59, 보험 0.08, 금융 0.21, 특허 등의 사용료 0.13, 사업 서비스 0.68 등이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벤처수출 살리려면▼

벤처 정책은 보호와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 벤처 생태계와 인프라 조성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미 탄생한 벤처 기업이 성장, 발전해 나가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정부는 벤처 기업의 탄생을 위한 토양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지원 위주의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을, 부문별 정책보다는 벤처 산업을 둘러싼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는 정책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벤처 산업 급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언제 그 역할을 축소할 것인지 분명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벤처 육성 정책은 물론 성과가 있었지만, 일정 기간 내에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신속히 그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1993년 정부 주도로 ‘요즈마 펀드’가 조성됐지만 민간의 투자자금이 늘어나자 1997년 민간에 매각하고 정부는 신속하게 시장에서 빠져 나왔다. 이스라엘의 벤처 전문가들은 ‘정부가 언제 어떻게 촉매 역할을 하는지’ 못지 않게 ‘정부가 언제 시장에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미 벤처산업과 시장,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메커니즘이 형성된 상황에서 정부내 각 부처의 경쟁적인 벤처 지원은 시장기능을 왜곡하고, 벤처기업이 스스로 혁신하고자 하는 노력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벤처 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은 △왜 민간 금융시장을 통해서는 목표가 달성될 수 없는지 △어떤 종류의 시장 불완전성을 시정하고자 하는지 △그러한 시장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을 때만 이뤄져야 한다.

미국이 명실상부한 벤처 대국의 위치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끊임없는 조직 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한 효율성 제고, 기술 및 지식자산에서의 우위 등이 놓여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벤처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를 확대하기보다는 벤처산업의 잠재력 배양을 위한 지식 자산의 확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교육, 기초과학, 원천기술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지식 인력의 양성을 위한 정책이, 고도의 지식기반형 경제에서 장기적으로 벤처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성소미 한국개발연구원 기업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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