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투신사 고객자금 서서히 증시로 이동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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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50대 중반의 부동산 사업가. 경기도에 있는 땅을 판 돈 20억원을 들고 설 연휴 직후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찾았다. 예비자금 20%를 빼고 1년 정도 금융자산으로 굴리고 싶다는 것. 상담 결과 그는 3억원을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에, 4억원을 주가지수연동형 상품에 넣고 나머지는 정기예금에 묻었다.

<사례 2> 20년 동안 예금으로만 재산을 불려온 43세 주부. “금리가 너무 낮아 여윳돈 1억원을 어디에 넣을지 모르겠다”며 외국계 은행을 찾아왔다. “주식 관련 상품에도 일부 넣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결국 100% 채권형 상품을 선택했다.

<사례 3> 증권사가 발행한 정기예금 성격의 자발어음에 4억원을 넣었던 50대 대기업 임원. 지난주 이 중 3분의 2를 빼내 MMF와 인덱스펀드에 절반씩 넣었다.

돈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산발적이지만 대강의 방향은 잡혀가고 있다.

6일 은행 증권사 PB센터나 투자자문사에 확인한 결과 투자자들은 여전히 6개월 이하의 단기예금이나 채권형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와 MMF 같은 단기상품에 머물러 있던 돈이 조금씩 증시로 흘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1억원 이상 굴리는 고객을 받는 하나은행 PB센터 삼성역 지점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주가지수 연동형 정기예금.

김성엽 팀장은 “원금은 까먹지 않겠다는 투자자들도 은행 금리가 자꾸 낮아지자 은근히 주식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2억원 이하의 PB 고객을 담당하는 씨티은행 김수지 사원은 “이달 들어 고배당주에 100%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한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6개월 정도 기다리면 정기예금 금리 이상은 나오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는 전언.

거꾸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하나은행 김 팀장은 “1년 동안 반토막이 났다며 증권계좌를 털어와 상담을 의뢰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증권사 PB센터를 찾는 고객들은 좀 더 적극적이다.

LG투자증권 정주석 웰스매니지먼트센터장은 “주식투자를 해오던 분들은 망설이는 반면 주식을 외면해오던 분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식형 상품을 적극 권하는 데도 올 들어 채권형에서 주식형으로 움직인 자금은 전체 고객자산의 10%에 그친다”고 전했다.

거액 자산가들은 아직 장고를 풀지 않는 분위기.

한 투자자문사 영업담당 이사는 “큰손들의 주식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고 말한다. 얼마 전 ‘큰손’ 한 사람을 만나 “아직 불확실한 면은 있지만 지금 주식을 사서 6개월만 기다리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한참 설명하자 “뭐가 불확실한 거냐” 꼬치꼬치 캐묻더니 “그렇다면 안 하겠다”고 한 마디로 잘랐다는 것.

메리츠투자자문 박종규 사장은 “부동산에서는 1년 이상 기다리는 큰손들도 증시에서는 몇 달을 못 견디고 떠나곤 한다”고 말했다. 큰손보다는 ‘돈을 불려야겠다’는 절박감을 가진 중산층의 1억원 미만 자금이 더 날렵하게 움직인다는 것.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상무는 “예금금리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서 저축성 투자대안을 찾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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