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링크, 국내 첫 ‘CB로 M&A’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9시 19분



코스닥 등록기업인 엔플렉스가 지난해 발행한 전환사채(CB) 때문에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M&A)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CB를 통해 쉽게 자금을 조달하려 했던 안이한 생각이 결국 1년 만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기업의 주인을 바꿔버린 것.

▽엔플렉스 인수합병〓경영컨설팅 회사인 캐피탈링크는 23일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엔플렉스의 CB 25억원어치를 사들였고 이를 27일 전부 주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CB가 주식으로 바뀌면 캐피탈링크는 엔플렉스 주식 303만주(지분 32.05%)를 갖게 돼 단번에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된다.

장내에서 주식을 사는 방식이 아니라 장외에서 CB를 사들여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기업을 인수하는 첫 번째 사례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CB〓문제가 된 CB는 엔플렉스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것으로 발행금액은 83억원이었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전환가격)은 5000원. 당시에는 CB가 모조리 주식으로 바뀐다 해도 물량이 166만주에 불과해 경영권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올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이 CB의 전환가격이 계속 낮아졌다는 점. 엔플렉스는 애초 CB를 발행할 때 자금을 더 쉽게 끌어들이기 위해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가격을 낮춘다’는 조건을 넣었다.

이에 따라 엔플렉스는 올해 세 차례나 전환가격을 낮췄다. 5000원이던 전환가격이 10월에는 987원으로 떨어졌다. 이 전환가격을 기준으로 CB가 전부 주식으로 바뀌면 그 물량이 무려 842만주나 된다. 이 회사 상장 주식(644만주)보다 더 많은 물량.

캐피탈링크는 이 가운데 25억원어치를 사들여 주식으로 바꿈으로써 단번에 엔플렉스의 최대주주에 오른 것.

▽무분별한 CB 발행〓CB를 통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장내에서 주식을 사는 적대적 M&A 보다 훨씬 편하다. 5% 이상 주식을 샀다는 이유로 공시를 할 필요도 없고, 인수되는 회사가 경영권을 방어할 시간도 거의 주지 않기 때문.

캐피탈링크 서충모 부사장도 “CB를 통해 기업을 사는 게 여러 모로 편했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점. 과거 자금을 쉽게 조달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CB를 남발한 코스닥기업이 적지 않다. 올해 주가 폭락으로 CB의 전환가격이 크게 낮아진 코스닥 기업도 수두룩하다.

굿모닝신한증권 오재원 애널리스트는 “최악의 상황을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CB를 발행한 코스닥기업들이 결국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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