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5년 한국 어떻게 변했나]⑤ 남은 과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8시 03분


《한국은 외환위기 후 5년 동안 연쇄부도와 대량실업 등 뼈아픈 고통을 딛고 오늘에 이르렀다.

비록 재정부문의 막대한 희생이 따른 것이긴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직접적 충격은 일단 벗어났다. IMF에서 빌린 돈도 3년9개월 만에 다 갚아 이른바 ‘IMF 졸업’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거나 더 악화된 부문도 적지 않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부’라는 구호가 무색할 만큼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1997∼2001년 도시근로자 상위 10%의 평균소득은 30.7% 늘어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3.9% 오르는 데 그쳤다.

여전히 이어져온 정권과 일부 기업의 정경유착, 관치(官治) 시스템, 사적(私的) 연고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도 바로잡아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가계대출 급증과 국내외 경제불안 등은 새로운 형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시리즈를 끝내면서 전문가들로부터 ‘IMF 5년’의 평가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들어본다.》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가장 크게 배운 교훈은 대기업과 은행도 경영을 잘 못하고 부실해지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제때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과 금융의 부실을 털어 버린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리한 규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업들에 획일적으로 부채비율 기준을 강요하고 심지어 은행의 사외이사 수까지 정부가 정했다.

또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 정책도 많았다.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평등주의·인기영합주의 정책은 곤란하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논리로 풀되, 경제 영역에서는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또다시 반(反)기업적이고 정치적인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면 대기업도 죽고 중소기업도 죽는다.

▽조윤제(趙潤濟·경제학)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의 외환위기는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압축적인 성장을 하면서 쌓아온 구조적인 문제가 동남아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 환율 금리 외환보유액 등 거시지표는 외환위기 직후보다 많이 개선됐다. 부실기업과 금융권도 어느 정도 정리돼 경제체질이 과거보다는 많이 튼튼해졌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과 임금의 움직임을 보면 외환위기 이전의 고비용 구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육박한 가계부채는 새로운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근본적인 시스템이 바뀌려면 아직 많이 먼 것 같다. 특히 정부와 공공부문, 노사부문의 개혁도 미진해 이 분야에서는 개혁의 가속페달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문건(丁文建)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IMF의 자금 지원을 받은 다른 국가에 비하면 빨리 위기를 극복했다. 공적자금을 과감히 투입해 금융부실을 털어 낸 것은 일본의 금융개혁이 지지부진한 것과 비교하면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거의 3년꼴로 경제위기설이 나오는 것은 아직 근본적인 시스템이 불안하다는 증거다.

금융기관의 민영화가 순조롭게 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관치의식에 젖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것 같다.

98년 이후 5년 동안 36번이나 되풀이됐던 냉·온탕식 부동산대책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만들어낸 엉터리 벤처기업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재열(李在烈·사회학) 서울대 교수〓 외환위기 이후 역점을 두었어야 할 개혁방향은 △분권화(分權化) △사적인 연고관계를 시장경쟁으로 대체 △투명성 제고 등 세 가지였다.

이 잣대로 볼 때 5년간 크게 바뀐 것은 없어 보인다. 특히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정부가 시장에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지만 빅딜(기업간 사업교환)에서 보듯이 오히려 시장논리를 무시한 권위적인 시장개입으로 여러 가지 실패를 낳았다. 고위공직 개방을 통해 민간부문 엘리트를 충원하겠다는 정부부문 개혁은 사실상 실패했다. 개혁은 인간관계적인 요소를 배격하려는 것인데 정권 자체가 지역적인 인연으로 형성된 인적 자원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가 계속 발전하려면 공공의 신뢰(public trust)를 높이고 법이 지배하는 시스템(rule-based system)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외환위기 당시 대통령경제수석 김인호씨의 시각

"DJ정부 정책실수로 과도한 고통 겪어"

“외환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7년 2월부터 11월 19일까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인호(金仁浩·사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외환위기의 본질조차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98년 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과 함께 ‘환란(換亂) 주범’으로 지목돼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실상을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에게 숨기거나 축소보고하고 구제금융 신청 시기를 늦춰 국가경제에 손실을 초래했다는 혐의에 대해 법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정책적 책임을 면하긴 어렵지만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가장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외환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고성장 정책과 기업의 무리한 투자, 지지부진한 금융개혁이 원인이었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97년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위기가 왔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후 극심한 경제난을 꼭 겪어야 했는지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98년과 99년의 경제난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구조조정을 하면 경제가 어느 정도 침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책 실수 때문에 과도한 고통을 겪었다. IMF와 이미 합의가 끝난 마당에 강 전 부총리의 후임자인 임창열(林昌烈) 전 부총리가 이를 번복한 것이 문제였다. IMF는 강 전 부총리와 합의할 당시에는 한국이 구조조정을 주도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뒤에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임 전 부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태도가 돌변했다. 이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교훈을 얻어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외환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달러 부족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달러가 부족하게 된 구조적 원인들이 거의 해소되지 않았다. 4대 개혁을 시급한 것부터 열거하면 정부 노동 금융 기업 순이다. 그런데 잘 된 순서는 정반대다. 정부와 노동부문 개혁이 제대로 되면 금융과 기업부문의 개혁은 정부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진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실력 이상의 목표를 인위적으로 정하고 추진하는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 철저하게 시장경제를 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가 할 일이 더 많다. 비유하자면 고문해서 범죄자의 자백을 얻어내는 일은 수사관 2, 3명이 손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수사를 하려면 더 많은 전문인력과 시간 및 비용이 필요하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경제지표 얼마나 달라졌나

국가 신용등급 아직 회복 못해…정부-가계 빚부담 우려할 수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5년.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고 주요 거시경제지표도 비교적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전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경제지표도 적지 않다.

국가신용등급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뿌듯해할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가 매기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외환위기가 본격화되기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무디스는 2단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3단계, 피치는 2단계 낮은 상태다.

정부와 가계의 빚은 “제2의 위기를 맞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올 만큼 크게 늘었다. 가계부채는 97년 말 211조원에서 올해 10월 말 420조원으로, 국가부채는 60조원(국내총생산·GDP 대비 13.3%)에서 작년 말 122조원(〃 22.4%)으로 급증했다.

나라살림이 나빠지고 돈 쓸 곳이 많아지면서 국민이 낸 총세금을 GDP로 나눈 조세부담률은 97년 19.5%에서 올해 21.8%로 높아졌다.


저축률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추세이고 기업들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망설이고 있다. 민간과 정부의 저축을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으로 나눈 총저축률은 97년 33.4%에서 지난해 29.9%로, 국내외 총투자를 GNDI로 나눈 총투자율은 34.4%에서 26.8%로 각각 낮아졌다.

96년 말 1만1385달러이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8900달러로 추락했다. 올해는 1만달러선은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98년 말 146만명에 이르렀던 실업자수는 올해 9월 현재 69만명으로 줄었으나 97년의 56만명보다는 여전히 많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7년 0.283에서 지난해 0.319로 높아지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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