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광고]베르사체, ‘조연’에 초점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7시 42분


광고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닮고 싶은 화가 한 분이 생겼습니다.

피카소도 아니고, 고흐도 아니고, 뭉크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신윤복입니다.

특히 저는 그의 작품 중 ‘단오도’를 단연 백미로 꼽고 싶습니다.

단오도를 볼 때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론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네 뛰는 여인이나 개울가에서 목욕하는 옷 벗은 여인들이 아니라 바로 바위틈에 숨어서 그들을 보는 사내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림 속 여인들은 그저 평범한 아낙들입니다. 하지만 바위틈 승려의 눈에 여인들은 ‘천사’의 모습인 듯 합니다. 또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승려의 눈빛과 마음에 동화돼 여인들의 모습에 더욱 집중합니다.

이 ‘주변인(사내 아이들)’의 돌출적인 모습 하나로 한 폭의 야한 풍속화는 해학이 넘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걸작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지요.

요즘 우리가 열광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베르사체(VERSACE)’의 광고도 이런 걸작에 속합니다.

베르사체의 광고는 광고인들이 흔히 갖는 편견과 상식을 단숨에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주인공 모델의 사진을 연방 찍어내고, 주인공 모델에게 광고의 모든 힘을 쏟아내는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 모델의 모습이 광고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는 생각.

하지만 베르사체의 광고는 정반대입니다. 단오도처럼 주변 인물들이 먼저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재미를 줍니다. 특히 수영복을 벗고 있는 남자의 엉덩이는 단오도의 승려처럼 여성 소비자의 미소를 끌어냅니다.

해변가의 주변인들로 인해 아예 튀어 보이려는 생각도 없어 보이는 여주인공이 단연 돋보입니다.

99.9%의 광고인의 사고방식을 뒤집은 베르사체 광고제작자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김양훈 웰콤 2팀 아트디렉터 dol@welcom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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