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지난해 짧은 기간 내에 특감을 벌여 적발한 부당 투입 규모만도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엄정하게 조사를 벌인다면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로 특감 자료를 분석한 민주당 이희규(李熙圭) 의원은 “이번에는 부처 장관이나 기관장들이 감사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은 사안만 집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배당 상품에 공자금 투입 ‘모럴해저드’〓은행과 투자신탁회사 등의 실적배당 금융상품의 손실은 예금주(또는 투자자) 몫이지만 공적자금을 투입, 국민 세금에서 물어준 셈이 됐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998년 7월 공적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동화은행 등 5개 퇴출은행의 신탁상품을 모두 공적자금으로 메워줬다. 특히 예금자보호법의 적용대상을 받지 않는 183개 부실 신용협동조합에 대해 1조9521억원의 공적자금을 털어 넣은 것도 정부의 대표적인 ‘직무유기’ 사항으로 지목된다.
▽대우그룹 강제지원했다가 공적자금 날려〓대우그룹 부도를 막기 위해 시장원리를 제쳐두고 정부가 금융기관들을 끌어들여 채권을 팔지 못하도록 한 것도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왔다. 금감위는 2000년 6∼7월 부도가 났거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대우그룹 부실 회사채를 갖고 있던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6948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이 중 2496억원은 곧바로 공적자금 손실로 이어졌고 나머지는 아직도 시장에서 처분하지 못하고 예보와 자산관리공사가 갖고 있어 잠재적인 부실로 남아 있다.
▽부실채권도 고가 매입〓재정경제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97년 12월 1차 공적자금을 조성하기 전에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주기 위해 서울은행 등 27개 은행이 발행한 후순위 채권을 사주면서 인정한도보다 1조1059억원을 초과 매입해 이 만큼 공적자금을 더 쓴 결과를 초래했다고 감사원측은 밝혔다.
또 97년 11월 영업인가 취소 우려가 있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사들였던 자산관리공사는 매입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결정하는 바람에 정산차액 7339억원을 발생시키고 이 중 3334억원은 아직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견제장치 없다는 게 더 문제〓문제는 정부의 정책 잘못으로 인한 책임에 대해서는 감사원 조치 이외에는 특별히 책임을 물을 만한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감사원은 대부분 해당 장관이나 기관장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거나 시정 통보하는 데 그쳤다. 종금사 출신의 한 임원은 “156조원의 공적자금 부실운용에는 정부 책임도 큰 몫을 차지한다”면서 “국회가 ‘겉핥기식’ 국정조사에 그치지 말고 정치권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