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전통제품 성공 비결은 '변화'

  • 입력 2002년 4월 8일 17시 22분


‘전통’은 강점이자 약점이다. 오래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뢰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닥다리라는 이미지로 흐를 수도 있다.

상품의 브랜드 전략도 마찬가지. 전통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시대변화에 맞춘 브랜드 전략과 만날 때 가능하다.

‘까스 활명수’ ‘순창고추장’ ‘서울우유’ ‘베지밀’.

이들은 ‘전통+변화’의 브랜드 전략으로 각각 자기 분야에서 ‘대표브랜드’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제품들이다.

‘100년 동안 한국인의 위장을 지켜온 소화제.’

‘까스 활명수’는 부채표로 잘 알려진 동화약품의 간판 스타이자 한국 제품의 산 역사다. 1897년 처음 나왔으니 햇수로는 105년.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3세기에 걸쳐 그 생명을 이어온 셈이다.

활명수(活命水)는 이름 그대로 ‘목숨을 살리는 신통한 물’이라는 뜻. 11가지 생약이 원료로 들어있는 이 약은 이제 한 기업의 제품이라기보다는 한 상품군을 대표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체했을 때나 소화불량, 식욕부진, 구토 증상이 있으면 사람들은 으레 약국에 달려가 “활명수 하나 주세요”라곤 한다.

시장 점유율은 ‘당연히’ 1위.

그러나 활명수의 단단한 기반은 단지 100년이라는 전통이 만들어 준 것만은 아니다. 한때 귀에 친숙했던 많은 전통 의약품들이 사라져간 가운데 활명수가 장수한 것은 전통이 주는 신뢰를 시대감각에 맞춘 마케팅의 조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00년을 이어온 약효, 부채표 까스 활명수”라는 전통의 무게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감각에 눈높이를 맞춘 발랄한 이미지와 만나면서 계속 신선하게 변주되고 있다.

수입 소화제가 많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체질에 적합한 정통소화제’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새로 내놓은 ‘까스 활명수 큐’는 ‘신구(新舊)’의 조화가 어우러진 제품이다. 기존 활명수의 약효에다 탄산가스를 첨가함으로써 청량감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호와 체질에 맞게 맛과 시원함을 보강했다.

고추장의 대표 브랜드인 대상의 ‘청정원 순창고추장’도 ‘옛것’과 ‘과학’의 합작품이다. 순창고추장은 섬진강의 맑은 물과 발효에 적당한 기후조건을 갖춰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됐던 고추장.

대상은 청정원 순창이라는 브랜드가 연상시키는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장류 발효의 최적지로 꼽히는 전북 순창에 공장을 지었다. 그럼으로써 고추장의 본고장인 순창의 이미지를 브랜드 이미지로 적극 연결해 청정원 순창 고추장과 순창을 동일화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치밀하고 과학적인 브랜드 전략이 가세했다.

대상은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소비자 사용 및 태도에 대해 조사해 개선점을 찾고 브랜드 전략에 활용한다.

순창고추장은 지난해부터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공식 장류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2002 한일 월드컵을 맞아 스포츠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우유업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서울우유는 1937년부터 우유 한길을 걸어온 부동의 1위 업체.

‘맏형’의 이미지를 상품 전략으로 연결하기 위해 체계적인 브랜드 및 이미지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해오고 있다. 전통과 신뢰 그리고 역사성을 강조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변신이 필요하다. 가령 최근 연 우유팩공모전도 그런 변신 노력의 하나. 3월에 실시한 공모전에는 460명의 대학생 및 일반인이 참여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한 많은 작품을 제출했다. 서울우유의 브랜드전략을 살펴보면 ‘카멜레온’ 전략이야말로 생존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은 ‘정식품’이라는 회사는 잘 모르지만 ‘베지밀’ 하면 친숙하다.

두유를 처음으로 식품화한 베지밀은 1973년 소아과 전문의인 정재원박사에 의해 첫선을 보인 음료.

처음에 베지밀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공급됐다. 정 회장이 직접 집에서 콩을 찐 후 갈아 환자에게 약처럼 제공했던 것. 그러다 찾는 사람이 많게 되자 본격적인 생산체제를 갖추고 베지밀 A B, 두 형태의 제품을 생산해 내게 됐다.

생산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베지밀의 ‘원형’은 변하지 않았다. 출생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베지밀 병제품 A B는 일종의 마니아층까지 형성하고 있을 정도.

하지만 전통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용기는 그대로지만 속에 담긴 내용물들은 다양해졌다. 전통을 지켜 ‘충성 고객’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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