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총량제’ 논란]“방송 시청률 무한경쟁 불보듯”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방송광고 총량규제제도(광고총량제)’를 도입하겠다는 문화관광부의 방침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방송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청자단체들이 반대해온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등 방송의 공익적인 기능을 해칠 우려가 높다는 게 그 이유.

현행 방송법은 방송광고시간을 프로그램 시간의 10% 이내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광고총량제’는 전체 방송시간 중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시간을 제한하되 그 테두리 내에서 방송사에 광고방송의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 부추겨〓광고총량제가 도입되면 방송사들은 광고비가 싼 이른 새벽이나 심야시간에는 광고를 줄이고 프라임시간대에 광고를 집중 배치함으로써 광고 매출액을 최대한 올리려고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방송사 사이에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지게 되며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정하 여성민우회 정책실장은 “문화부가 프로그램의 상업화가 기승을 부릴 방송 환경을 조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간광고 허용〓광고총량제가 도입되면 사실상 방송프로그램의 진행을 도중에 끊고 내보내는 중간광고가 가능하다. 지난해 문화부가 방송법시행령시안을 마련했다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포기한 중간광고를 광고총량제에 슬쩍 끼워 넘어가자는 의도라고 방송계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왜 도입하나〓문화부측은 “지상파 방송3사의 디지털 전환비를 충당하기 위해 방송광고 총량규제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광고총량제를 도입할 경우 방송사의 광고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방송사의 방만한 운영으로 인한 디지털 재원 부족을 시청자에게 전가하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북대 김승수 신문방송학 교수는 “지상파 3사의 한해 평균 순이익은 각각 1000억원대에 달한다”며 “디지털 전환 비용도 방송사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광고총량제를 허용하려는 것이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방송사측의 해묵은 요구사항을 들어주려는 정치논리의 산물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방송정책의 혼선〓방송위원회 산하 방송정책기획위원회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시청률 경쟁 등을 이유로 광고총량제에 대해 ‘도입 보류’ 입장을 밝혔다. 이는 방송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방송위 내부에서조차 이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것.

이런 가운데 문화부가 광고총량제를 도입할 경우 방송관련부서인 문화부와 방송위의 입장이 서로 차이가 나는등 국내 방송정책의 혼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문화부측은 “방송사 인허가 건은 방송위원회의 몫이지만 광고문제는 문화부가 주무부서”라며 “이번주 내로 방송위와 광고총량제 도입을 위해 방송법시행령을 수정하는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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