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할인점 정보싸움 "하루가 짧다"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57분


할인점 홈플러스 한 매장의 농산물 영업담당 김모 대리(32)는 매일 아침 인근 경쟁점으로 출근한다.

“밀감(100g) 98원, 배추 580원….” 그는 매장 직원 몰래 가격정보를 초소형 녹음기에 녹음한다. 김 대리는 “경쟁점을 나오자마자 핸드폰으로 본부 바이어에게 연락을 취하고 우리측 가격이 높은 것은 바로 가격을 맞춘다”고 말했다.

첩보 영화를 연상시키는 이런 ‘정보전’은 전국 할인점, 특히 일산이나 분당 중동 등 신도시 지역이나 대구 등 동일 상권내에 할인점이 3∼4개 몰린 곳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치열한 ‘스파이전쟁’〓 경쟁사 직원과 자연스레 안면을 터 암묵적으로 서로 용인해 주는 경우도 잠깐. 한 업체가 치고 나가면서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지면 보안요원에 쫓겨나기 다반사다. 한국까르푸 관계자는 “쇼핑카트에 잔뜩 물품을 쌓아 다니는 손님으로 가장하거나 매일 옷을 바꿔입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까르푸는 매장별로 인근 다른 할인점을 조사하는 ‘전문 요원’을 2명씩 두고 있다.

롯데마그넷 한 매장의 가공식품담당 황모씨(33)는 “매주 월, 화는 경쟁점 시장조사의 날”이라며 “어떤 날은 품목당 3∼4차례 가격조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기획전 등 각 할인점이 특가(特價) 행사를 펼칠 때 인근 경쟁점 바이어가 총 출동하다시피해 가격정보를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정보 누출을 막아라〓할인점들의 주요 홍보수단은 신문 사이에 들어있는 광고 전단지. 점포당 많은 곳은 4만여개 상품이 있는 터라 일일이 가격을 살펴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전단을 통해 나가는 게 주로 코카콜라 라면 분유 기저귀 배추 무 등 소비자가 민감한 품목들이 대부분이어서 광고 전단은 핵심 점검대상이다.

신세계 이마트 관계자는 “전단지를 미리 찍어놓고도 신문이 보급소에 배달되는 새벽녘때 이를 전달한다”며 “전단지를 찍는 인쇄소에도 보안을 특히 강조한다”고 말했다. 기획전을 때 상품 섭외 등의 정보는 같은 회사라도 직접 관련이 없는 직원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할인점의 치열한 정보전은 ‘최저가격 2배 보상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웃 할인점보다 가격이 높을 경우 ‘영수증’만 제시하면 두말하지 않고 차액의 두배를 보상하지만 점포당 지급액은 월 8만∼9만원 이하.

현투증권의 박진(朴進)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내년만해도 전국에 할인점이 45∼50개 새로 출점하는 등 할인점들끼리의 경쟁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할인점간의 가격과 서비스전쟁은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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