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현지화로 중국시장 뚫는다"…윤곽 드러나는 재계전략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06분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과 LG 구본무(具本茂) 회장의 잇단 중국 방문을 계기로 재계가 공들여 추진해온 대(對)중국 전략의 윤곽이 ‘현지화’로 드러나고 있다.

삼성과 LG는 중국시장을 미국에 이은 ‘제2의 승부처’로 삼아 △연구개발(R&D) 및 디자인센터의 현지 설립 △국내 생산설비 대거 이전 △부품 및 원자재 현지 조달 등을 골자로 하는 전략을 마련했다. 이달 중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장단 회의를 여는 SK도 “중국에 또 하나의 SK 본사를 만든다”는 원칙에 따라 비슷한 내용의 사업 계획을 작성할 예정.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중국행(行)’ 러시에 대해 불가피한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핵심기술 유출과 국내 제조업 공동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재계, 현지화로 중국시장 공략〓삼성과 LG의 최고경영자들은 중국방문 기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삼성 이 회장은 “이제부터는 중국 사업 전략과 삼성의 생존전략이 일치한다”고 강조했고 LG 구 회장은 “변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더라”고 말했다.이에 따라 각 그룹은 중국 사업의 개념을 단순 임가공을 통해 챙긴 과실을 본국으로 보내는 기존 방식에서 이익이 생기면 전액을 현지에 재투자하는 형태로 바꾸기로 했다.

삼성은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톈진(天津)에 디자인센터를 세우고 현재 사장급인 중국 본사의 직급을 부회장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해 쑤저우(蘇州) 반도체 조립공장을 증설하고 상하이에 판매법인을 신설키로 했다.

LG도 베이징(北京) 인근에 전자부문 R&D 센터를 세우고 현지 인력의 채용을 늘리기로 했다. LG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기술 개발과 부품 조달, 완제품 제조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중국에서 자체 해결하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화 부작용은 없나〓기업들이 중국시장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시기를 놓치면 중국에 들어갈 기회 자체가 봉쇄될지 모른다는 절박감 때문.

삼성전기와 삼성SDI는 톈진과 상하이에 각각 전자부품 공장을 신설해 국내 생산라인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LG화학도 중국 공장의 PVC 생산용량을 현재의 연산 22만t에서 2005년까지 64만t으로 늘려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할 계획이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들일 때 기술이전 효과가 없으면 공장만 짓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연구위원은 “기업들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중국 현지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산업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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