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합격기원 상품' 웃기는게 역시 최고

  • 입력 2001년 10월 30일 19시 06분


《대학입시 ‘최후 결전(決戰)의 날’이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길게는 유아원에서부터 15년에 걸쳐 지은 ‘공부농사’가 11월 7일 한나절에 판가름난다. ‘전쟁터’로 떠나는 수험생들을 위한 ‘합격 기원 상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래식 엿에서부터 위스키, 꿀 등을 기술적으로 집어넣은 고급 초콜릿까지 해마다 계속되는 ‘수험 마케팅’ 품목들은 여전하지만 마케팅 포인트는 톡톡 튀는 신세대 감각에 맞게 다양해졌다.》

▽언어유희와 상품 패러디〓올해 ‘합격기원 상품시장’의 화두는 단연 ‘언어유희’.

수험생 동생에게 줄 선물로 대학(大學)의 동음이의어인 큰 종이학(大鶴) 모양으로 포장한 합격기원상품을 고른 대학생 정승범씨(22·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합격기원상품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웃음을 주는 것이 제일’이라는 인식이 큰 만큼 감각적인 문구가 적힌 것에 먼저 손이 간다”고 말한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듯 올해는 땅콩엿 해바라기씨엿 등을 한 곳에 담아 파는 ‘가세가세 대학가세’ 와 ‘대학가서 인생 피자’ 등의 종합상품이 인기다. ‘가세 가세’는 ‘가위’의 사투리로 포장에도 가위 모형을 붙여 ‘상징성’을 가미했다.

반면 지난해까지 인기세를 몰았던 ‘잘 풀어’ 휴지, ‘잘 찍어’ 포크와 모형 카메라, ‘딱 붙어’ 딱풀 모형 엿, ‘잘 보라’ 돋보기 등 일차원적인 언어유희를 상품화한 제품은 시들해졌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기를 끌었던 ‘합격기원’ ‘고진감래(苦盡甘來)’등 ‘뻔한’ 문구는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업계에서는 이를 색다른 컨셉트와 ‘썰렁한 말장난’을 즐기는 신세대의 변화무쌍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 다른 트렌드는 유명상표를 패러디한 상품들.

올해 처음 등장해 매진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는 ‘합격을 멋찌게’ ‘한번에 대학 가래’ 등은 각각 인스턴트 찌개와 ‘3분 카레’ 등의 제품을 패러디한 상표를 달고 출시됐다. 내용물은 물론 ‘찌개’나 ‘카레’가 아닌 ‘엿’이다.

유명 수입 아이스크림의 CF에서 따온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를 인용한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는 문구를 단 한 상품은 여러 대학에 합격했을 경우 본인이 원하는 대학을 택할 수 있는 ‘선시험(先試驗) 다지원(多志願)’ 세대에게 최대의 ‘덕담’이나 다름없다.

떠먹는 유산균 음료를 패러디한 ‘다풀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엿을 넣어 ‘종합선물세트’ 개념으로 출시된 ‘수능 크래프트’는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패러디한 것이다. ‘고 3종족과 재수생, 삼수생 종족의 끝없는 혈전…’으로 시작하는 재미있는 패키지 문구가 시선을 끈다.

▽‘금기(禁忌)’는 없다〓94년 말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직장인 윤모씨(25)는 시험보기 며칠 전 먹은 미역국 때문에 재수를 하게 됐다고 굳게 확신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미끄럼’을 연상시키는 모든 물건들이 수험생들의 금기품으로 여겨졌기 때문. 하지만 ‘미리 액땜해서 실전에서 효험을 보자’는 홍보 문구로 입시 마케팅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도 생겨나면서 합격기원상품의 ‘금기벽’에 도전하고 있다.

신세대 수험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편.

수험생 김지현양(18·서울 은평구 신사동)은 “미역이나 바나나는 각각 철분, 섬유질이 풍부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액땜할 겸, 실속도 챙길 겸 이 같은 선물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쉽게 깨진다’는 이미지 때문에 꺼렸던 계란프라이 모형도 ‘잘 풀라’는 뜻이 있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고 있다.

변기펌프 모양을 본뜬 포장 엿도 인기. 역시 ‘엽기적인 아이템’을 선호하는 신세대들의 취향을 반영한 상품이다.

▽판매 열기는 왜?〓팬시용품업체 ㈜아트박스의 ‘합격기원상품’ 매출액은 해마다 20%씩 성장하고 있다.

체인형 제과업체 ㈜파리크라상도 일반적인 찹쌀떡 등 ‘뻔한’ 상품보다 찰떡 속에 초콜릿을 넣은 ‘퓨전 상품’ 등을 선보이면서 전년 대비 37%의 판매 신장을 낙관하고 있다.

올해는 수험생 수가 지난해에 비해 11%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판매가 활기를 띠고 있는 데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각 대학에서 수시 모집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면서 수능시험 이전부터 ‘수험 열기’가 달아올랐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예측을 토대로 상품 출시를 예년보다 2∼3개월 앞당겨 ‘재미’를 본 업체들도 있다.

▽효험이 있나?〓‘남들도 하니까’ ‘안 하면 섭섭해서’ 주고받는 합격 기원 상품들이 과연 ‘효험’이 있는 것일까.

마음 속으로는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것이 많은 이들의 솔직한 심정.

그러나 ‘의외의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삼성서울병원 청소년 정신과 홍성도 박사는 “안도감을 높이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자신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을 느끼면서 든든해하는 수험생이 많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