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채 손해배상 판결 파장]궁지몰린 투신, 소송가능성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36분


20일 금융감독원에는 대우채 편입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의 전화 문의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법원과 금융감독위 분쟁조정위원회가 잇따라 대우채 편입과 관련된 투신사의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소송을 내려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쇄도한 것. 기관과 일반 투자자들은 정부의 대우채 환매연기 조치로 인해 뒤늦게 50∼95% 가량의 투자금을 되돌려 받았지만

이번 판결이 “투신의 신탁자산은 고객 돈이므로 부실기업 지원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우채와 관련된 분쟁으로 벌어진 소송은 크게 두 가지. △정부의 대우채 환매 연기조치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과 △대우채권을 규정에 맞지 않게 과다하게 편입하는 등 운용상의 문제로 투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대우채권 편입 수익증권의 환매를 연기한 것은 2월부터 5월까지 여러차례 판례를 통해 적법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태. 서울고법 제12민사부는 5월 S사가 현대증권을 상대로 낸 환매대금 반환청구 항소심에서 “현대증권이 금감위의 환매연기 승인을 이유로 환매에 응하지 않은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하는 등 이와 유사한 각종 소송에서 환매연기 조치 자체를 문제삼은 원고측이 패소했다.

그러나 문제는 대우채 과다 편입 등 투신사의 운용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소송들.

서울지법이 20일 전기공사공제조합이 한국투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억19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 그 예다.

법원이 문제를 삼은 부분은 투신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부분. 한국투신이 대우의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우채를 신규로 취득한 것은 펀드 가입고객에 대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어겼다는 판결이다.

그러나 법원의 이같은 판결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소송에서 투자자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100%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태다. 6월 서울남부지원은 대우채 부당 환출입으로 손해를 본 현대정유가 삼성투신운용을 상대로 낸 1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전기공사공제조합의 한국투신을 상대로 한 소송과 내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법원은 당시 대우채 문제의 경제적인 불가피성을 상당히 고려,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것. 결국 법원 역시 대우채 문제와 관련해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소송마다 판결이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금감위와 금감원은 이 문제와 관련,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대우채 환매 연기조치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투신사들이 당시 대우채를 과다하게 편입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중 하나가 정부의 ‘환매연기 조치’였기 때문. 투자자에 대한 배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투신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또다른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투신사의 ‘펀드의 위규운용이라는 실수’를 지적한 것으로 축소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투신사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투자자에게 고의로 손해를 입혀가면서까지 펀드를 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훈·김승련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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